흑자 낸 健保 새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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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의 건보 재정 흑자 달성의 일등 공신은 직장인이다. 지난해 직장인의 월급 봉투가 두툼해진 덕을 본 것이다. 건보 재정에 대한 세금 지원이 크게 늘어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돈을 남긴 이유는 외부 요인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는 언제든지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부가 '8년 만에 흑자'를 자랑하고 나오자 당장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이 건보 재정에 기여한 이유는 이렇다. 보험료는 일단 전년도 수입으로 매긴다. 그랬다가 연말에 세금을 정산하듯이 다음해 5월 보험료를 정산한다.

지난 5월 그렇게 더 낸 돈이 5천5백억원이다. 직장인의 정산금은 2001년 6백억원, 지난해 1천여억원 정도에 불과하던 것이 올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1일의 건보 재정 통합에 대한 직장인의 불만이 쉽게 가라앉기 힘들 수도 있다. 지난해 직장인의 월급은 11.6% 올랐고 지역가입자의 소득이나 재산과표는 4% 가량 올랐다. 전체 보험료 부담은 직장인들이 더 많이 늘어난 것이다.

올 상반기 흑자의 또 다른 공신은 2001년 5월 건보 재정이 파탄나면서 그해부터 지역 건보에 대한 국고 지원이 지역 재정의 40%(종전 28%)로 크게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담배부담금을 신설해 지역 재정의 10%(이중 55%는 직장 건보 사용)를 지원했다. 2000년 1조5천여억원이던 국고 지원금(담배부담금 포함)이 지난해는 3조원을 넘어섰다.

물론 당국의 노력도 적잖다. 2001년 5월 진찰료와 처방료 통합 등 21가지의 재정 절감 대책을 내놓았고 이것이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다. 또 건보 적용 일수를 연간 3백65일로 묶고 소화제나 종합감기약 등을 보험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환자들의 의료 이용을 제한한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내년이다. 올해 경기가 가라앉다 보니 직장인들의 월급이 동결되거나 소폭 오르는 데 그칠 전망이다. 보험료 수입이 올해만큼 늘지 않을 게 확실하다는 얘기다.

또 내년 보험료 인상에 대한 반발도 높아지고 있다. 노동계와 재계가 "흑자가 난 마당에 보험료는 왜 올리느냐"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당초 계획(8% 인상)을 달성하기 힘들 수도 있다.

동네의원들도 정부의 절감대책 때문에 의약분업 후의 반짝경기가 사라졌기 때문에 수가(酬價)를 올려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올해부터 흑자를 이어나가 2006년에 누적 적자를 모두 털어낸다는 정부의 계획은 아직 '지뢰밭'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신성식 기자

<건보 재정 흑자 이유는>

#외부 요인

-직장인 지난해 보험료 정산 수입:5천5백억원

-지역건보에 대한 국고 지원 증가:2000년 지역 재정의 28%에서 2001년부터 40%로 상향 조정

-담배부담금 지원:2002년 지역 재정의 10% 신설

#내부 요인

-재정 지출 증가율 둔화:96~2000년 연평균 17.5% 증가, 올해 4.4% 증가

-각종 재정 절감 대책:2001년 5월 진찰료 처방료 통합 등 21가지 대책 시행

-의료 이용 증가율 감소:2002년 건보적용 3백65일로 제한, 일부 일반약 보험 제외

<흑자 실현 후 우려되는 상황>

-올해 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보험료 수입 감소

-"흑자인데 보험료 못 올려주겠다"며 가입자 반발

-병.의원들, "수가 더 올려달라"고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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