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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가 개발, 제약사 임상…해외 수출 ‘성공 공식’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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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바이오벤처 제넥신은 약효 지속 기간이 긴 성장호르몬을 비롯해 호중구(백혈구의 일종) 감소증, 자궁경부전암, 빈혈 등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국내 유한양행·녹십자·한독 등이 함께 개발 중인 제넥신의 신약 기술은 지난해 중국 기업 두 곳에 1600억원 규모로 수출됐다. [사진 오종택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7시쯤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 내 쏠리드스페이스 강당. 국내 중견 제약기업과 대학병원·바이오벤처·벤처캐피털 등에서 100여 명이 모였다. 판교 지역 바이오벤처들이 신약 연구개발부터 투자·제도 관련 고민과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만든 ‘혁신신약살롱 판교’의 첫 모임이었다.

세계 5위 사노피도 신약의 60%
전 세계 유망 벤처와 손잡고 개발
“기업이 홀로 연구하는 시대 지나”

같은 시각, 대전의 사노피 R&D연구소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내 바이오벤처 툴젠의 사무실에서도 연구자와 기업인들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판교-대전-서울을 잇는 화상 세미나가 열린 것이다.

이승주 사노피 R&D연구소장이 2012년부터 매달 개최한 ‘혁신신약살롱’의 확장판이다. 양재혁 한국바이오협회 정보공유확산실장은 “판교는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이 많아 협업의 시너지가 클 것 같아 모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업계에서도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미약품에서 10년 후 먹거리를 찾았듯, 국내 기업들도 바이오벤처와 대학에서 성장 동력을 찾으려는 시도다.

“전 세계에서 벤처를 찾겠다”고 선언한 한미약품은 국내에선 레퓨젠과 인공항체 플랫폼 기술을 연구 중이다. 녹십자는 바이오 기업 제넥신과 지속형 빈혈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2013년 제넥신 지분을 인수한 한독은 지속형 성장호르몬 치료제를 공동개발 중이다. 대웅제약과 강스템바이오텍의 줄기세포 치료제, CJ헬스케어와 항체바이오벤처 ANRT의 공동연구 도 활발 하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술 수출 고리를 통해 생태계 전반을 키우는 효과로 이어진다. 바이오벤처가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과 기술을 중견 제약기업이 사고, 이후 임상시험을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이면 다시 국내외 대기업이 이를 사들이는 식이다.

수천억원의 글로벌 임상 비용을 혼자 감당할 국내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도 기술 수출에 기업들의 관심이 높다. 세계 시장 의 1.8%에 불과한 국내 시장에 갇힌 ‘내수용 신약’의 한계를 절감한 결과다. 국산 신약 27개 중 지난해 100억원 이상 생산된 약은 6개뿐이었다.

기술 수출을 전문으로 하는 바이오벤처도 생겼다. 큐리언트는 신약 후보물질을 사들여 임상 2상까지 진행한 뒤 이를 다시 수출해 돈을 번다. 고가의 연구설비 없이도 신약을 개발한다. 큐리언트의 핵심 자산은 국내외의 유망한 벤처를 발굴하고 이어주는 안목이다. 이 회사 남기연 대표는 “내부 한계에 부딪힌 대기업과 실험장비를 갖추는 데만 초기 투자금을 다 쓰는 바이오벤처의 비효율을 극복한 대안 모델”이라고 말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성공하려면 글로벌 연구·산업 트렌드를 잘 알아야 한다. 바이오신약 앱스틸라는 SK케미칼이 2009년 호주 CSL에 수출해서 탄생했다. 김훈택 혁신연구센터장 등 연구원 5명이 2000년부터 9년간 매달린 끝에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

김 센터장은 “혈우병 치료제는 g당 수십억원씩 하는 고부가가치 바이오의약품이어서 8조원(국내는 300억원)짜리 해외 시장을 목표로 도전했다”며 “기술 수출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가 뭔지, R&D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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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혁신의 싹을 발굴·육성하는 데 꾸준히 투자한다. 사노피(세계 5위)는 개발 중인 신약 프로젝트의 60% 이상을 외부 파트너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를 뒤져 유망한 바이오벤처를 찾고 연구를 기획하는 일에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승주 소장도 지난 5년간 아시아 전역의 연구자를 찾고 연결하며 민간 오픈 이노베이션을 이끌었다. 그는 “이젠 기업 연구소 혼자 연구해서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며 “꿀(혁신 신약)을 따려는 벌(국내외 바이오 대기업)이 찾아올 수 있게 꽃밭(바이오벤처층)을 가꿔야 한다”고 말했다.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와 상품을 연구개발·상업화하는 과정에서 외부의 기술과 지식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대규모 R&D 투자를 해도 신약 개발 확률이 떨어지자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이다.

글=박수련·최은경 기자 park.suryo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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