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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살리려면 해운업 먼저 지원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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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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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

채권단이 그간 STX조선해양에 쏟아부은 돈은 무려 4조5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STX조선해양은 지난 5월 결국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이후에도 약 2조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걸로 알려진다.

성동조선에 투입한 2조 5000억원도 허사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또 다른 중소 조선사인 SPP조선해양에도 2조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SPP조선 인수합병의 우선협상 대상자였던 SM(삼라마이더스)그룹과 채권단이 최종 합의에 실패하면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2조원대의 분식회계가 밝혀진 대우조선해양도 4조5000억원을 투입하는 조치가 진행 중이지만 미래가 암울한 건 마찬가지다.

조선업에 막대한 지원금이 투입된데 비해 해운산업은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덜하다. 부실 위험에 노출된 금융규모가 조선산업은 70조 인데 비해 해운 산업은 2조원대다. 그런데도 채권단은 해운업에 추가 지원은 없다는 식으로 배수진을 치고 있다. 해운 업계는 장기해운불황 극복을 위해 그동안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에 끊임없이 지원을 요청했다. 선박매입펀드·회사채 신속인수제·선박금융 활성화 등 일부 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해운업계의 자구 노력만을 강조했다.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재무건전성 만을 감안해 구조조정이 추진되는 분위기다.

해운과 조선은 실과 바늘의 관계다.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이 구조조정이라는 파고를 넘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무역·금융·철강 등 유관 산업을 염두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

해운업계가 배를 발주하지 않으면 조선업계는 일감을 확보하지 못해 생존할 수 없다. 이런 관계를 생각할 때 조선업을 살리고자 한다면, 일단 해운산업부터 선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해운 산업이 살면 해운사가 조선업계에 선박 건조를 주문할 테고, 이렇게 되면 조선 업종의 활황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2008년 이후 조선 산업 자체에 막대한 지원금을 쏟아 부었다. 결과적으로 조선산업 직접 지원은 무용지물이었다. 혹자는 우리나라 조선 산업은 수출 비중이 95%에 달하기 때문에 조선 산업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해운업은 규모나 비중 면에서 조선업에 비할 바가 아니라 조선 산업에 지원금이 우선 투입돼야 한다는 논리다.

역발상이 필요하다. 수출 비중이 95%라는 것은 내수 비중이 5% 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조선업 내수 비중을 늘리려면 국내 해운 업체가 새 배 발주를 해야 한다. 바로 이 점이 현재의 조선·해운 업종의 위기를 타개하고 구조조정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발상이다.

패자가 되지 않으려면 경쟁에서 살아남는 수밖에는 없다. 우리나라 해운사가 희생양이 된다면 잃는 게 너무나도 크다. 해운 따로, 조선 따로의 대처에서 벗어나, 해운업과 조선업을 함께 조망하는데서 구조조정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김 영 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