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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 깜짝 고별 개그 콘서트 '갈갈이 3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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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부터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갈갈이 3형제’가 오늘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지난 13일 '개그콘서트'(KBS 2TV 일요일 밤 9시 방송)의 '갈갈이 3형제'에서 '느끼남' 이승환이 첫 대사를 던졌을 때 많은 이들은 일종의 '개그'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하지만 연이어 '갈갈이' 박준형이 그동안 갈았던 무의 개수를 헤아리고, '옥동자'정종철이 언제나처럼 온곡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어투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라며 눈물을 훔치는 걸 본 다음에야 개그가 아닌 실제 상황임을 알아차렸을 터다.

2001년부터 '개그콘서트'의 간판 코너로 자리매김해온 '갈갈이 3형제'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지난주로 96회째였다.

"제가 먼저 끝내자고 했습니다. 욕심 같아선 1백회는 채워야지 했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고요. 더 이상 시청자들을 웃길 수 없는 개그라면 빨리 그만둘수록 좋지요."

마지막회 녹화를 마친 뒤 만난 '갈갈이 3형제'중 맏형 박준형의 말과 표정엔 비장한 각오가 묻어났다. 비록 '개그콘서트'가 시청률 1위(13일 31.3%, 닐슨미디어 리서치 기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지만 '갈갈이 3형제'로 변덕스런 시청자들의 눈길을 계속 붙잡기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들었단다.

"제 앞니도 그만 혹사 시켜야죠. 아직은 괜찮지만 더 갈면 어찌될지 아무도 장담 못해요" 그는 개그맨다운 고별의 변을 덧붙이는 것 역시 잊지않았다.

"우리끼리 관객들의 반응을 '오늘은 무 여덟개 짜리''오늘은 무가 겨우 네개' 식으로 평가해왔어요. 그런데 갈수록 무 개수가 줄잖아요. 섭섭해도 접어야겠다고 동의했죠"

그동안 꼼꼼한 성격 때문에 이 코너에 등장했던 각종 소품의 조달 및 제작을 도맡았었다는 이승환은 끝도 없이 뒷얘기를 늘어놓을 기세였다.

"한번도 소품을 방송국에 맡긴 적이 없어요. 신선한 무라야 사각사각 잘 갈리니까 제가 동네(서울 등촌동) 수퍼에서 녹화 당일 제일 좋은 걸로 사다 날랐죠. 나중엔 수퍼 아저씨가 협찬도 해주셨구요. 그 뿐인가요? 주말마다 양재동 하나로마트에 가서 알로에며 수박, 파인애플 등 갈 수 있는 건 다 사들였다니까요"

마지막회에서 박준형이 직접 밝힌 바와 같이 그간 방송에서 그가 앞니로 갈아댄 무만해도 총 1백20여개. 그 밖에 수박 20통, 멜론 40개, 알로에 12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과일과 야채가 무대에 등장했다. 가장 힘든 상대는 늙은 호박이었다는데 이승환은 "며칠 전 미리 사다가 말랑말랑해지도록 놔둔 적이 많다"며 비화를 살짝 귀띔했다.

박준형의 돌출된 앞니에 주로 의존하던 '갈갈이 3형제' 코너는 회를 거듭할수록 이승환.정종철의 개인기가 살아나면서 무수한 유행어들을 쏟아냈다.

입으로 못내는 소리가 없다는 정종철이 상태가 다소 불량한 마이크의 소음에 이어 "사랑하는 온곡초등학교 어린이 여러분…"이라며 교장선생님의 조회시간 훈화를 패러디한 것이 대표적.

"인터넷 게시판에 이 학교 교장선생님이라는 분이 '학교 아이들이 더 이상 나를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어졌으니 부디 개그를 그만둬달라'는 글을 올려 깜짝 놀랐었죠. 알고보니 장난 메일이라 계속할 수 있었지만요"

실제로 온곡초등학교 졸업생이라는 정종철이 털어놓은 경험담이다. '오늘은 왠지 눈물이 나네''루브루브' 등 특유의 느끼한 유행어를 만들었던 이승환은 "얼마 전부터 코에 실리콘을 넣었다는 개그를 선보인 후엔 유명 성형외과 의사들이 진짜로 성형수술해주겠다며 난리"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우리 모두를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게 해준 '갈갈이 3형제'를 결코 잊을 순 없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 웃기는 코너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들 '3형제'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지켜볼 일이다.

글=신예리,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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