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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스스로 묻고 칠판에 쓰면서 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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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배명고 2학년 어수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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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배명고 2학년 전교 1등 어수영군은 자기 방의 화이트보드 앞에선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어군은 “공부했던 내용을 말로 설명해보면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말로 설명하면 개념 정확히 이해
교사 입장서 시험문제도 만들어 봐
공부는 양보다 질, 오답 꼼꼼이 분석

매해 수능 만점자들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주문이 있다. 교과서에 집중해라, 충분한 휴식을 취해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는 충고다.

문제에서 무엇을 묻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답을 찾는 과정이 명확하고 깔끔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공부의 원칙이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얼마나 엄청난 양의 문제를 소화해야 할까 부담부터 느끼게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명고(서울 삼전동) 2학년 전교 1등 어수영군은 “내가 선생님이 돼 문제를 만들어보면 된다”고 말했다. 교사·학생 역할을 번갈아 가며 스스로 묻고 답하는 1인 2역할 공부법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 향상

어수영군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자기 방의 화이트보드 앞에 선다. 교실 책상 4개 정도를 이어 붙인 커다란 화이트보드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 공부할 분량과 단원을 화이트보드에 간단히 적은 뒤 책상에 앉는다. 어군은 “항상 90분 정도 공부할 분량을 정해 놓고 시작한다”며 “90분 공부하고 10~20분 쉬는 방식으로 흐름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규칙적인 페이스와 적절한 휴식, 여기까진 여느 우등생과 다르지 않다. 어군만의 특이함은 화이트보드 앞에서 드러난다. 어군은 책상에 앉아 집중하다가도 시시때때로 화이트보드 앞에 선다. 머릿속에 흐릿하게 자리 잡은 개념을 화이트보드에 하나하나 옮겨 적는다. 어군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거나 개념을 정리할 땐 화이트보드에 전체적인 개념도를 그리고 선생님처럼 말로 풀이해본다”고 설명했다. “선생님처럼 개념을 말로 설명해보면 막힘 없이 자연스럽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꼭 나와요. 바로 그 부분이 제가 이해를 정확하게 못하는 부분이죠. 어떻게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개념이 머릿속에 저절로 정리돼요.” 개념을 화이트보드에 정리·요약하면서 핵심 키워드를 뽑게 되니까 한 번 정리가 되고, 이것을 다시 말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키워드 사이 빈칸을 메꿔가면서 빈틈없이 내용을 또 한 번 확인하는 거다.

어군은 화이트보드 앞에 서면 이렇게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교사·학생 역할을 번갈아 해보면서 스스로 묻고 답한다. 어군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 두루뭉술하게 끝날 때가 많은데, 이렇게 말로 내뱉으면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고 말했다.

어군이 화이트보드를 활용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개념 이해에 초점 둔 공부법은 속도는 느려도 착실하게 기초를 다져줬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상승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전교 20등, 2학년 때는 10등대 중반, 3학년 마지막 시험에서는 전교 2등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전교 1등이다. 고등학교 1학년 내신 평균 등급은 1.0, 모두 1등급이다. 지난 3월 치른 2학년 모의고사에서도 국어·영어·수학을 합해 4개만 틀려 모두 1등급을 받았다

직접 만든 문제가 시험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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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앞에서 공부하고 있는 어수영군.

어군이 중학교 때부터 꾸준하게 하는 일이 또 있다. 교사의 입장이 돼 중간·기말고사 문제를 직접 만들어보는 거다. 교과서와 학교 프린트, 기출 문제, 교재 속 문제를 참고해 중간·기말고사 대비 모의고사를 만든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매 중간·기말고사마다 반복해보니 점차 그럴싸한 문제가 만들어졌다. 기존 문제에 관련된 개념을 추가해 보기를 하나 더 만들거나 일부러 오답을 유도하는 함정을 고민하면서 선택지를 바꿔보기도 한다. 문제 만드는 실력이 쌓이면서 어군이 만든 문제가 실제 중간·기말고사 문제로 나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지난 중간고사 대비용으로 만든 생명과학 모의고사에서 ‘생명 현상의 특징’과 관련해 만들었던 서술형 문제 하나가 그대로 중간고사에 출제됐다. 중학교 때는 사회·과학·기술 등 암기 과목을 이렇게 대비했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생명과학을 이런 식으로 대비한다.

모의고사를 직접 만드는 일은 꽤 시간이 많이 든다. 틈틈이 시간을 내서 생명과학 한 과목을 이렇게 준비하는 데 한 달가량이 걸렸다. 보통은 그 시간에 한 문제라도 더 많이 풀어보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지만 어군의 생각은 다르다. 어군은 “문제를 만들어보는 과정 자체가 가장 확실한 시험 대비다”라고 말한다. 이어 “개념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문제를 만들 수 없다”며 “선생님이 어떤 문제를 낼까를 항상 고민하면서 교과서를 살피면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 만들어보기는 깊이 있는 개념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꼼꼼함과 출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길러줬다. 어군은 수업을 들을 때, 교과서를 살필 때, 문제집을 풀 때 늘 습관처럼 ‘내가 이 문제를 낸다면 이렇게 바꿔볼 텐데’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선생님들이 항상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고 강조하잖아요. ‘이 부분을 문제로 내겠구나’라고 의식하고 수업을 들으면 수업 중에 강조하는 부분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챙길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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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풀이보다 지문 분석 초점

‘양보다는 질’, 어군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다. 어군은 “꼭 틀리는 문제를 계속 반복해서 틀린다”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작정 양만 늘리는 것보다는 왜 틀렸는지 이유를 정확히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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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문장 구조를 분석한 어수영군의 영어 노트.

꼼꼼함은 국어·영어에서 실력 발휘를 한다. 핵심은 단순화다. 어군은 항상 문제 풀이보다는 지문 분석에 중점을 둔다. 국어 비문학 지문을 분석할 때는 전체 주제를 파악하고, 단락별 소주제를 찾아 핵심 키워드에 밑줄을 긋는다. 키워드를 찾은 뒤에는 각 키워드를 뒷받침하는 근거 문장에 밑줄을 긋고 번호를 매긴다. 예를 들어, 공간 디자이너의 정의에 대한 글이라면 공간 디자이너의 역할을 설명하는 문장에 ①②③과 같은 번호를 매겨 한눈에 글의 흐름이 이어지도록 구조를 단순화하는 거다. 어려운 지문을 분석할 때는 길게는 30분까지 시간을 들이기도 한다. 어군은 “키워드와 핵심 문장에 번호를 매겨 밑줄을 그어두면 문제를 읽고 다시 지문을 훑어야 할 때 쉽고 빠르게 정답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며 “긴 지문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독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글의 논리적인 흐름을 먼저 이해하고, 길고 복잡한 문장은 구문별로 짧게 끊어 해체해본다. 주어부와 서술어부를 먼저 찾고, 목적어·형용사·부사 등이 주어·동사를 어떻게 꾸미고 있는지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어려운 문장은 정리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고 해석할 때 주의점을 꼼꼼하게 메모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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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영군.

어군이 지문 분석보다 더 공을 들이는 건 오답 분석이다. 정답을 정확하게 찾는 것뿐만 아니라 오답은 왜 틀렸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한다. 어군은 “국어 문제 중에 위 지문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고르라는 문제라면 틀린 설명을 담은 선택지를 모두 맞는 설명으로 바꿔본다”며 “오답의 이유를 정확하게 찾아야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학은 식의 정확한 전개가 중요하다. 문제를 풀고 나면 항상 해설과 비교해보고 식이 정확한지를 여러 번 확인한다. 틀린 문제, 풀이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문제들은 별표 표시를 해뒀다가 아침 자습 시간에 5~6차례씩 반복해 다시 풀어본다. 어군은 “많은 양을 소화하지는 못하지만 하나하나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며 “당장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처럼 보여도 개념을 착실하게 이해하고 문제를 풀면 속도가 더 빨라져 길게 보면 더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책상 위 교재
○국어: 수능 3개년 기출 문제집(학교 부교재), 매일 지문 3개씩 푸는 비문학(키출판사)
○수학: 올림포스 미적분1(EBS), 수능특강 미적분1(EBS), 블랙라벨 미적분1(진학사), 학원 제작 교재
○영어: 수능특강 영어 독해연습(EBS), 학원 제작 교재
○물리: 뉴탐스런 평가문제집 물리1(EBS), 수능특강 물리1(EBS), 인터넷 강의 교재
○화학: 수능특강 화학1(EBS), 단권화 화학1(디딤돌)
○생명과학: 수능특강 생명과학1(EBS), N제 생명과학1(EBS), 자이스토리 생명과학1(수경출판사), 기출 문제 모음집(학교 프린트)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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