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장승 명인이 중국 영화 주연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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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외할아버지 역을 맡은 김종흥(맨 오른쪽)씨가 영화 속 딸·외손자와 장승을 깎고 있다. [사진 김종흥 제공]

중국이 한국의 유교식 가정교육에 그렇게 관심이 깊은 줄 몰랐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에서 탈춤을 추고 장승을 만드는 김종흥(62) 명인이 최근 중국에서 현지 배우들과 영화를 찍은 뒤 들려 준 소감이다. 김 명인의 공식 직함은 하회별신굿탈놀이·목조각 이수자. 김 명인은 지난 4일부터 열흘간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시의 초청으로 단편영화 '만복위해만(萬福威海灣)'의 주연으로 나섰다. 졸지에 영화배우가 된 것이다. 중국 배우 4명과 주민·학생들도 출연했다.

영화는 중국인과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문제아를 다뤘다. 공부는 않고 컴퓨터·스마트폰에 빠져 따돌림을 당하는 아들이다. 김 명인은 외할아버지 역을 맡았다. 엄마는 출장을 떠나면서 아들을 외할아버지 집에 맡긴다. 외할아버지는 공부 대신 손자의 손을 잡고 산 꼭대기로 올라간다. 손자는 땀을 흘려야만 높은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같이 장승도 깎는다. 바닷가에서 연을 날리며 넓은 세상도 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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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는 장면. [사진 김종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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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는 장면. [사진 김종흥 제공]

또 할아버지가 친구를 만나 그 아들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우연히 듣게 된다. 공부하란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이른바 인성교육이다. 효과가 나타난다. 손자가 자기도 박사학위를 받고 싶다는 말을 한 것. 할아버지는 "너도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운다.

김 명인은 영화를 찍으며 대사를 한국어로 말했다. 영화는 한국의 조손(祖孫) 교육이 중국의 교육문제를 풀 수 있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 그는 "공자와 맹자의 고향인 산둥성에는 교육 한류 같은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웨이하이에는 김씨가 만든 장승이 세워진 한락방이라는 한국공원도 조성돼 있다.

극본은 중국의 저명 문인인 원학강(遠學强)이 맡았다. 웨이하이시는 이 영화를 9월 중국 산둥성 영화제에서 개봉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출품할 계획이다. 한편 김씨는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생일이 같아 여왕과 함께 축배를 들기도 했다.

안동=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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