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의 상처 딛고 사찰복원·정화한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중공불교 승려들의 청정상은 마치 살아있는 불보살의 화현을 보는것 같았읍니다. 진지한 수행자세와 서릿발 같은 염한 지계는 「살찐 얼굴」을 전혀 찾아볼수 없는 깡마른 노소승려 모두의 체취에서부터 금세 느낄수 있더군요-.』 최근 중국불교 성지를 순례한 불교조계종 석광옥비구니 (캐나다 터론토시 불광사주지)가 일시 귀국, 홍위병 문화혁명때 모두 폐쇄됐다가 다시 속속 문을 열고있는 중공불교재건의 실상을 소상히 전했다.
광옥스님의 중국불교 성지순례 (9월1∼21일)는 8·15해방이후의 한국승려론 처음이다.
『북경 시내에만도 1백∼4백명씩의 승려가 상주하는 큰 절이 4개나 있고 중국 제1의 국보사찰 조계산 남화사 (옛이름 보림사)는 매일 수만명의 국내외 관광객 행렬이 줄을잇더군요.』
사찰재건은 정부당국이 주도, 78년부터 문혁때 강제환속시켰던 비구·비구니들을 모아 다시 승려증을 발급하고 사찰의 복원·정화도 모두 국고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들의 운영재정도 자립단계까지는 전적으로 정부가 지원한다.
사찰들이 운영재정의 자립을 이루는 중요·재원은 호텔과 식당 경영-.
대체로 2백∼3백여동씩의 독립건물을 가진 「대규모」가 특징인 중국불교 사찰들은 절방을 호텔 객실로할용,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천태종 본산인 상해근처의 국청사는 2백여명의 승려가 상주하는데 9백99개의 방을 갖고 있더군요. 일본불교 천태종 신도들의 시주로 불상 개금불사까지한 국청사는 밀려드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절방을 숙소로 제공하고 대규모식당을 운영, 3년전부터 자립운영을 해오고 있읍니다.』
중국 4대 명산의 하나인 영파 보타낙가산의 사찰등도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보타산에는 생관음 도량으로 유명한 실덕굴을 비롯, 2백여개의 절이 있는데 문혁때 1백여개가 파괴돼 없어졌다.
현재 남은 1백여 사찰중 12개가 복원공사를 마무리중이고 내년부터 일반에 공개될 예정.
광옥스님은 사찰측의 특별한 배려로 아직은 출입금지인 복원사찰들을 참배했고 보덕굴에 주석한 도가 제일 높다는 중국 당대의 선승 운봉스님(77)을 만나 보았다.
『찬란한 5가7종의 중국선불교 뿌리를 내린 육조혜능조사 (638∼713년)에대한 숭모는 신·불신자를 넘어 아주 대단하더군요. 절마다 한국 큰절들의 대웅전만한 육조당이 빠짐없이 있고 당안에는 조사의 영정이나 게송을 모셨읍니다.
육조가 불법을 널리 펼쳤던 소관 조계산 남화사는 현재도 여전히 제1국보사찰로조사의 입적일인 음력8월23일에는 해마다 몇10만명의 국내외 불자와 인근 주민들이 모여 성대한 추모제를 지낸다고.
남화사는 나무꾼 출신의 혜능조사가 『본래 갈고 닦을 한 물건도 없는』(본내무일물)달마선의 정법안장을 돈오, 오조 홍인조사로부터 법맥을 이어받고 주석해 선풍을 크게 드날렸던 고찰이다.
절들이 폐쇄되자 스님들은 18∼20년씩 농장이나 공장에서 노농을 하며 지냈고 환속을 끝내 거부, 양자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스님들도 적지않다는 것이다. 『두번째 순례지로는 북경의 법제사와 법원사를 찾았읍니다. 중국불교협회 사무실이 있는 법제사는 1백70명의 승려가 상주하는데 절규모는 우리나라 해인사의 3배가 넘더군요.』 광옥스님은 북경시내에만 47개의 절이 있었는데 문혁때 모두 폐쇄됐고 현재는 4개 사찰만이 복원, 문을 열었다고 전했다.
재건된 중국불교의 기구조직은 중앙기구로 북경에중국불교협회를 두고 지방에는 각 지역별 불교협회가 결성돼 있다.
현재는 18세이상의 국민 모두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있다.
승려 현황은 60대이상의 노승과 20대의 사미들뿐이고 40∼50대 승려는 문혁사찰 폐쇄기간의 공백으로 전무한 실정-.
80년대 들어 5개의 불교대학이 부활됐고 상해 옥불사는 지난9월 문혁후 처음으로 4년제 강원졸업생22명을 배출했다.
『낙양 소림사주변은 온통쿵후도장이 들어서 산과 들판이 쿵후연습 함성으로 가득하더군요.』광옥스님은 중국 절들의 엄청난 규모에 거듭 놀랐다는 것이다.
몇백동씩의 웅장한 건물과 몇백명씩의 승려가 상주하는 사찰 위용이란 한국불교 대찰들은 비교가 안될 정도라고.
현재 문을 연 사찰중에는 7백명의 승려가 상주하는 절도 있다. 웬만한 절이면 대체로 선원·강원·율원을 모두 갖춘 총림의형태를 갖추었고 큰절주변암자 20∼30개는 비구니들이 상주, 운영한다.
현재로는 승려수가 부족해 밀려드는 관광객 치다꺼리등의 사찰운영에 쫓기느라 전통적인3동3하 (겨울 석달, 여름 석달)의 참선수행 결제를 못하는 형편이다. 용맹정진은 1년에1주일씩만 하는 정도다.
그래서 중국스님들은 법거양같은 선종 종문의 도행에는 약한 편이다. 그러나 교학적인 해박한 교리이해와 계율준수는 세계어느나라 승려의 추종도 불허하는 청정상을 지니고있다는 것이다.
『낙양의 용문우굴은 산 전체가 마치 벌집처럼 뚫려있는 장관이었읍니다. 경주석굴암 형식의 크고 작은석굴이 수백개이고 석굴들에 모셔진 크고 작은 돌부처가 모두 16만개나 된다고하더군요.』 절건축 양식은 한국사찰과 같고 단육도 옛 그대로 잘 보존됐거나 다시 칠해 놓았다는 것이다.
국보사찰 남화사의 유명한 5백나한벽화는 문혁때도 전혀 안건드려 온전히보존돼 있다.
중국불교의 메카인 남화사는 2년전 홍콩·미국등지의 화교불자들이 시주를해 대웅전 부처님 개금불사도 했다.
조동종본산인 태백산 천동사도 문을 열어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과 참배객이 줄을 잇고있다고.
광옥스님은 23일 캐나다로 다시 돌아가면서 『기화가 오면 다시한번 중국불교 성지순례를 가겠다』고했다. <이각윤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