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의 브렉시트 관전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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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호 18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이후 43년만에 영국이 EU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인들은 난민을 포함, 인구의 0.5%에 달하는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일자리를 위협받는데다 이들에 대한 복지수당이나 임대주택 제공 등에 따른 부담이 급증하는데 반발했다. EU 탈퇴를 통해 국가주권을 강화하고 EU의 복잡한 규제에서 벗어나 경제적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유럽의 통합 과정에서 독일을 비롯한 대륙국가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데 대한 반감도 탈퇴 지지율을 높였다.


투표 결과에 따라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브렉시트가 현실화됐다는 사실 자체가 예상을 벗어난 일이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향후 2년간에 걸친 재협상 과정을 거쳐 EU 단일시장에 최대한 참여하는 노르웨이 식으로 영국과 EU간의 경제적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전망 엇갈리는 실물경제에 대한 악영향 영국 내부적으로 스코틀랜드의 독립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EU 차원에서도 프랑스와 네덜란드·덴마크 등 많은 나라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을 중심으로 EU 탈퇴 움직임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하나의 유럽을 향한 길이 매우 험난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증가는 올 2월 이후 안정성을 보여오던 글로벌 금융시장의 리스크에 대한 민감도를 더욱 높여 돌발 악재에 대해 과해 보이는 반응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한데 비해 실물 측면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실물경제에 대한 영향은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영국 정부나 헤지펀드 등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분석된 것이어서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고, 영국의 입지가 나빠지면 다른 지역이 영국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부작용이 일정 부분 상쇄된다는 지적도 있다. 리만사태나 유럽 재정위기와 비교해보면 브렉시트의 경우 금융기관의 큰 폭 손실과 연쇄적 파산, 이에 따라 자금경색으로 이어지는 위기확산 과정과 성격이 달라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영국의 EU 회원국 지위 상실로 인한 각종 제도변화에 따른 혼란으로 일정 정도의 피해는 불가피할 것이다. 재정위기에서 벗어나 최근 2년간 나름 선전하던 유럽 경제의 힘이 약화될 수 있다. 금융시장 충격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일부 취약국의 금융·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에는 실물 경제로의 파급효과가 커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각국의 정책 변화도 예상된다. 올해 세계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하던 미국의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세계경제 위축 가능성은 좀 더 줄어든 것으로 보이며 일본의 양적 완화는 더욱 적극성을 띨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통화정책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재정여력이 있는 나라들에 대한 재정지출 확대를 권유하는 글로벌 정책공조도 예상할 수 있다.


“세계화는 탈락한 기층의 반발 부른다”한국 경제 역시 수출과 내수 양면에서 다소간의 부정적인 영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유럽 경기위축에 따른 수출 위축과, 자산가격 하락 및 심리 악화에 따른 내수위축이 예상된다. 유로·파운드 등 유럽통화 약세와 달러·엔 등 여타 선진국 통화 강세의 틈새에서 원화가 상대적으로 약세를 띠면서 수출경쟁력 개선도 기대되지만 세계경제 및 교역 위축에 압도돼 효과는 부작용을 일부 완화시키는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현 상황에서 브렉시트의 영향 못지 게 중요한 것은 브렉시트의 교훈에 대해 살펴보는 일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바다 건너 미국의 트럼프 후보의 선전에서 공히 발견되는 점은 글로벌화에서 소외된 저소득층의 강력한 지지가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국민들의 찬반이 소득과 나이에 따라 뚜렷이 구별된 것에 대해 영국 정부는 상당히 부담을 느꼈다. 취약계층은 브렉시트나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것의 합리성 여부를 떠나 변화를 원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다수다. 경기가 부진할 때 사회적 취약계층의 고통이 확대되는 반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과 배려는 약해지기 쉬워 불만과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제어되지 않은 세계화는 탈락한 기층의 반발을 부른다”는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정치경제학)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글로벌화로 소득격차가 벌어졌을 때 사회안전망을 확충했듯이 향후 각국이 경제성장 속도를 높이든지 그것이 어렵다면 포용적 성장의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신민영?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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