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품싸고 좋더라"| IBRD·IMF손님들 쇼핑솜씨 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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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IBRD·IMF 서울쇼핑」. 서울의 백화점과 이태원등 쇼핑가는 IBRD·IMF 서울총회가 과거 어느 때의 국제행사보다 규모가 커 6천여명의 외국 빈객들을 맞이했던 만큼 기대가 컸었다. 특히 총회에 참석하는 대표들이 명사들이고 부유층이어서 돈깨나 쓰고 그 덕택에 특수까지 일지 않겠느냐고 내다봤었다. 11일 총회가 끝날 무렵을 전후해서 쇼핑가는 붐비기 시작. 이태원의 진도모피점등 몇개 가게에서는 하루매상이 평소의 몇 갑절 이상이나 됐다. 또 어떤 양복점은 하청을 주면서까지 주문복을 소화하느라 바쁘기도 했다. 그러나 한산한 상점도 많았다. 1백48개국에서 모인 명사들과 그 부인들의 쇼핑솜씨는 어떤 것일까를 추적해 보았다.…○
○…가장 잘 팔리고 있는 것은 모피코트와 실크의류·마춤양복 등. IMF총회 참가자들의 대부분이 부유층인데다 당초 입국목적이 쇼핑에 있었던 건 아닌 만큼 그들의 쇼핑품목에는 일반관광객들과는 다른 구분이 있는 듯.

<평소의 4배 주문>
연일 6백여명의 외국인들이 몰리고 있는 진도모피점의 경우 각국 대표들의 입국이 시작된 9월말쯤부터 매기가 일기 시작, 지난 8일에는 하루에 8만달러어치가 팔려 연중최고 매상액을 기록했다. 신분 밝히기를 꺼려한 어느 나라 대표는 한꺼번에 11벌의 모피코트를 구입, 2만달러를 즉석 지불해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아일랜드의 한 대표는 구로동 본사공장을 견학중인 부인에게 모피코트 구입비를 지원키 위해 승용차편으로 단숨에 달려오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중동·남미·아프리카지역의 참가자들도 적지 않게 모피코트를 구입, 『에스키모인들에게 냉장고를 팔았다』는 농담이 오가기도.
진도측은 이번 IBRD·IMF 서울총회의 특수를 기대, 지난 8월부터 색상·사이즈·품질 면에서 보다 다양한 제품들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소 3만∼4만달러선이던 하루 매상액이 연일 최고기록을 경신하자 당초 예상한 50만달러 매출은 쉽게 넘어설 것이라며 더없이 기쁜 표정들.
양복점들도 대호황. 이태원플라자에 매장을 내고있는 VIP양복점의 경우 연일 주문이 몰리는 바람에 주문량의 60%이상을 하청에 맡기고도 찾는 날짜·흥정가격 등에 맞춰 일부주문은 사양(?)했을 정도. 일반관광객들처럼 대량주문하는 경우는 적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의 한 두벌 주문을 받다보니 평소보다 4배가 넘는 하루30여벌의 주문을 받게 되었다고. 더구나 순모 등 고급복지 주문이 주종이라 양복점으로서는 금상첨화격.
실크는 어느 나라 참가자도 몇 벌은 사는 품목. 앞서의 상품들이 그렇듯 해외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싼가격에 알아주는 품질임을 익히 아는 탓인지 참가자들마다 실크옷 사 모으기에 바쁘더라는 것. 맥코이 실크점의 경우 하루 1백벌까지 매상이 오른 때가 있었다. 심지어 시내지하아케이드나 동대문시장을 찾아 서너벌씩 실크옷감을 떠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부피 큰 상품 외면>
○…반면 기대이하인 품목도 많다. 일반의류· 운동화· 가방·일스킨(장어가죽제품) 등 일반관광객들의 큰 인기를 얻어 온 이태원물건의 상당수가 별 재미를 못 보았다고.
의류전문점인 빅토리아 타운의 지배인은 한사람에 2, 3달러짜리 T셔츠 몇 장씩 사는 것이 고작이라며 실망(?)을 토로했고 운동화점·가방점 상인들도 너 댓개는 쉽게 사는 다른 외국관광객들과는 달리 기껏 한 두개를 사는 게 보통이라고 했다.
가죽제품은 유럽인들이 가죽잠바를 찾고, 미국인들이 가방을 중심해 일스킨 제품을 좀 사는 정도. 무겁거나 부피 큰 놋쇠장식품이나 이불·담요 등은 아예 외면했다.
IMF쇼핑의 명암이 이렇게 엇갈리자 관련상인들간에는 『관광시즌 절정기인데도 「IMF손님」들 때문에 씀씀이가 큰 일반관광객들마저 줄어들어 오히려 평년작 수준의 장사도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소리까지 나왔다.

<있는 사람 더 알뜰>
○…IMF총회 참가자들의 쇼핑을 두고 관련상인들간의 소감도 여러가지. 장삿속으로는 한마디로 『짜다』는 게 공통된 이야기지만 『역시 다르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있는 사람들이 더 알뜰하다』고 보는 상인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상인들의 공통된 평은 『그들이 꼼꼼하고 실속있게 물건을 사더라』는 것.
「마구잡이」 쇼핑은 안 하더라는 지적이다. 어찌나 여러 곳을 둘러보고(심지어는 골목상가까지) 가격과 상품을 비교하는지 파는 쪽이 몹시 애를 먹었다고 한다.
특히 구미지역 사람들에 대해서는 『깍정이들』이란 얘기가 상인들 사이에 자주 오르내렸다.
가격에 개의치 않고 품질을 우선하는 후한 쇼핑을 하기도 하지만 표시선물용 소품 등 품목에 따라서는 소소한 가격차이까지 비교, 문제삼는 일이 많기 때문.
이번 쇼핑객들이 부유층인데도 불구, 돈 쓰는데 신중하다는 것은 인사동골목의 한산함을 봐도 짐작할 수 있을 듯.
도자기·골동품점이 밀집해 있는 이 골목에는 가끔 구경꾼들만 지나는 정도로 당초 기대와는 전혀 딴판.
도자기는 몇천원짜리부터 수십만원짜리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인 만큼 문외한으로서 언뜻 사기에는 망설여지는 품목이기는 하지만 쇼핑객들이 인사동골목에 몰리지 않는 것은 돈 쓰는데 철저한 외국인들의 일면을 보여준 것.

<돌아서 나가는 체>
○…각국 대표들이 3백만달러 이상은 쇼핑하는데 뿌리고 갈 것으로 당초 관계당국은 전망했었다. 상인들은 얼마큼 이 같은 기대치에 가까왔을지 고개를 갸우뚱.
이런 가운데 관련상인들간에는 각국 참가자들을 안내하고 온 안내원들에 대한 원성이 높다.
외국인들을 데리고 온 안내원들이 처음부터 흥정에 개입, 터무니없이 40∼50% 할인을 주장하는 통에 상인들은 외국인들과의 흥정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고. 게다가 어디서『교육』(?)을 받았는지 동남아인들 뿐 아니라 구미인들까지 무조건 깎고 보자는 식으로 덤비더라는 것.
심지어 어느 쇼핑객은 깎아달라는걸 들어주지 않았더니 돌아서 나가는 체까지 하더라고 어느 상인은 실소까지 할 정도였다.

<대개가 실속파들>
○…총회 각국대표들의 쇼핑씀씀이가 알뜰한 반면 서울총회의 준비와 진행을 위해 워싱턴본부에서 미리 파견된 4백여 사무직원들 중에는 충분한 시간여유를 가지고 실속있는 쇼핑을 했다는 후문이다.
빠르게는 지난 7월부터 입국한 이들 본부직원들은 퇴근 후에는 물론 점심시간 한시간도샌드위치로 아껴가며 남대문시장·이태원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한 여직원은 액세서리·구두·의류를 비롯한 일체의 신변용품과 전통인형 등 선물·기념품도 사 모았다며 한국상품에 대해 싸고 좋다는 칭찬이 대단했다.
어느 나라 대표는 숙소를 싼 곳으로 옮겨 그 차액으로 선물 등의 쇼핑비를 늘렸다는 뒷얘기도 있다.

<박신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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