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법무부 직원, 살인 하루 전 범인 들락거린 아파트 갔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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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포동 H아파트에서 여성을 살해한 뒤 도주한 김모(36)씨가 살인을 저지르기 하루 전 김씨를 관리하던 법무부 담당자가 이 아파트를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가 평소 간 적이 없던 곳에 이틀 연속 갔기 때문에 현장 확인에 나선 것이었다.

전자발찌 끊고 도주 14시간 뒤에야
경찰에 김씨 행적 정보 전해줘
살인도 아파트 관리실 제보로 알아

하지만 그는 김씨가 이 아파트에서 누구를 만났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또 이 같은 김씨의 최근 행적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던 법무부는 김씨가 전자발찌를 훼손한 지 14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에 이 정보를 줬다.

법무부와 서울 서초경찰서 등에 따르면 김씨가 전자발찌를 끊은 때는 17일 오후 9시37분쯤이다. 그는 14~16일 매일 한 차례씩 H아파트에 갔다. 그전까지 간 적이 없던 곳이다.

이 때문에 김씨를 관리하던 법무부 담당자는 14일 김씨에게 연락해 무슨 목적으로 H아파트에 갔는지 물어봤고 김씨는 “아는 사람이 있어 만나러 갔다”고만 말했다. 이후 다음날(15일) 또다시 김씨가 H아파트에 가자 이번엔 담당자가 아파트에 직접 찾아갔다. 전자발찌 부착자가 특이 장소에 방문하면 범죄 예방을 위해 방문지가 어떤 곳인지와 방문 목적 등을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15일 오후 4시쯤 담당자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김씨는 이미 떠난 뒤였다. 결국 그는 김씨가 현장에 간 목적을 확인하지 못했고 아파트단지라는 사실만 파악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인 16일 이곳에 다시 간 김씨에 의해 고모(60)씨가 아파트 안에서 살해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범죄 예방을 위해 특이 장소 방문 시 목적을 파악해야 하는 건 맞지만 범죄 발생 전에 누구를 만났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등의 사생활을 모두 조사하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법무부는 김씨가 전자발찌를 끊기 전날까지 사흘 연속으로 H아파트에 갔다는 사실을 김씨 도주 14시간 만인 18일 낮 12시쯤 경찰에 알려줬다. 이 때문에 경찰은 18일 오후에 탐문 수사를 시작했다. 이미 김씨는 차량을 렌트해 대전으로 도주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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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대전에서 여성의 가방을 날치기하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살인 사실은 숨겼다. 고씨 사망은 아파트 관리실 직원이 경찰에 제보해 확인됐다. 법무부 직원(15, 17일)과 경찰관(18일)이 김씨를 추적하기 위해 왔다는 점을 알고 있던 관리실 직원이 고씨가 택배 물건을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경찰이 19일 오후 고씨 집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만약 김씨가 대전에서 다른 범죄로 체포되지 않았다면 장기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김씨 도주 이틀 전 법무부는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들을 실시간으로 감독하고 경찰과 공조해 곧장 현장에 출동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신속한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범행 전 돈 요구, 성관계 확인 중”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경찰에서 “부동산 영업 일을 하다 한 달 전쯤 피해자 고씨를 알게 됐고 1000만원을 빌려 달라고 했는데 매정하게 거부해 홧김에 입과 코를 약 5분간 막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14, 15일 두 사람이 함께 아파트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했으며 고씨는 발견 당시 나체 상태였지만 성관계 여부는 부검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살인 등의 혐의로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윤정민·송승환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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