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다지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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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외진 시골의 작업장에서 오직 작품에만 열정을 쏟고 있는 조각가 친구를 찾아갔다.
마침 연일 내렸먼 가을비로인해 시골길은 진흙탕이었지만 산이나 들은 한결같이 계절을 그대로 흠뻑 받아들이고 있어서 오랜만에 나에게도 창작의욕이 솟구쳐 올랐다.
국도에서 작은 산길로 접어들어가서도 그의 작업장은 한참 더 산골동네에 있었다.
약간 높은 둔덕에 자리잡고있는 대문도 없는 그의 오두막에 들어서니 전시회 목록에서 보았던 낯익은 작품들이 마당 가득히 세워져 있었다. 한 예술가의 고독한 숨결과 고심참담했던 자기 완성에의 열기가 작품 하나하나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서울에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혼자 내려와 벌써 몇년째 이렇게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오직 흙을 주무르고, 돌을 쪼고, 석고를 뜨면서 자기자신과 정면대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질녘 몇달만에 아빠의 작업장에 내려온 아이들과 다시 바이바이를 하는 그들 가족의 모습을 보며, 뭔가 엉성하기만하고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 같은 세상의 한쪽에 이렇게 서로 인고하며 애쓰고 살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구나 싶어 가슴이 설랬다.
자기 실현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곁가지를 쳐내려가는 용기, 이미 획득한 행복 속에 안주함이 없이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는 정신이 소중한 의미로 다가들어 왔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가을 들판은 그것을 더욱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도 지난 여름동안 내 방 한쪽에 밀쳐두었던 원고지들 속으로 깊이 침잠하는 가을을 맞으리라.
그 위에 더운 이마를 부딪고 나를 깎는 고통과 맞서보리라.
아무래도 나는 이 가을의 문턱에서 너무도 좋은 가을 친구를 만난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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