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유해물질 정보 공개 의무화…소비자집단소송, 징벌적 손배 도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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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요즘도 매일 병마와의 싸움, 가해기업과의 싸움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받은 상처는 깊어 아물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화학물질을 사각지대 없이 관리해야 하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 법적 배상·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확실한 절차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제2 가습기 살균제 사태 막으려면

독성물질의 체계적 관리는 필수다. 국내 독성물질 데이터베이스(DB)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 신소재와 신제품은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독성물질 관리인력이 크게 부족해서다. 김성균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국내 화학물질 4만3000여 종 중 독성이 파악된 것은 6600종뿐”이라며 “독성물질 관리 인력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같은 제품이라도 미국에서는 기업이 유해물질 정보를 공개하고 국내에서는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의 유해물질 정보 공개를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살생물제(Biocide·생명파괴제) 관리부처가 제각각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문제다. 구제제·살균제·살충제·기피제 는 보건복지부(약사법)가, 식품용기·포장살균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품위생법)가, 방부제·방충제·소독제는 환경부(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가 담당한다.

각기 다른 부처에서 관리하다 보니 신제품이 나오면 사각지대가 생긴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일본의 소비자청이나 미국의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처럼 한 부처에서 관리하면 전문성도 높아지고 소통창구도 하나가 돼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소비자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이 국민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면 소비자 개개인은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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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가해자의 불법행위가 중대할 경우 실제 입증된 손해액과 관계 없이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이고, 소비자집단소송은 피해자 일부가 소송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도 해당 판결로 피해 구제를 받는 제도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 15일 발표한 변호사 1545명 상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변호사 10명 중 9명(91.7%)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배상 규모로는 통상 손해의 10배를 초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31.8%로 가장 많았고 10배가 23.6%, 3배가 18.6% 순이었다. ‘법무법인 이정’의 김낭규 변호사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같이 불특정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는 소비자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채윤경·손국희·정진우·윤정민·송승환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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