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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방폐장 부지 선정기한 12년, 길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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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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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

국내 원자력산업 도입 이후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이하 방폐물) 관리기본 계획안이 발표됐다. 정책추진 33년 만에 정부가 내놓은 실질적 첫 관리정책으로 과정이 대단히 중요함에도 세간의 관심은 부지가 어디로 결정될지에 쏠려 있다.

부지가 제대로 선정되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타당한 절차와 일정이다. 주목할 점은 정부가 여러 단계의 정밀 지질조사를 하여 고준위방폐물 처분에 적합한 부지를 선정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최종 선정 부지에 고준위방폐물을 영구처분하기에 앞서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중간저장시설을 함께 건설하겠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현재 원전부지 안에 저장하고 있는 고준위 사용후핵연료를 옮겨와 지역사회의 부담을 해소하겠다는 복안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맘때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처분 부지를 2020년까지 선정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일정의 현실성에 대해 필자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12년간의 부지 선정 일정은 지질조사 등 과학적인 검증과 주민의사 확인을 위해 필요한 시간 이다. 하지만 12년이라는 시간은 필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촉박한 일정이다.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물 영구처분장 부지를 확정하고 성공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핀란드는 20여 년 동안 위성사진, 지질 지구물리도, 기반암 조사 등의 평가를 통해 온칼로를 예비 후보지로 선정했다. 다시 10여 년 동안 야외정밀 지질조사, 수리지구화학탐사, 암석역학조사 등 타당성 평가를 수행한 뒤에 최종 후보지를 결정했다. 오늘의 성공적 건설의 배경에는 이렇게 무려 30여 년에 걸친 부지선정 타당성 조사를 한 준비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스웨덴도 27년 만에 최종 부지를 결정한 것처럼, 우리는 이 과정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저준위 방폐물보다 방사성 독성이 1000배가량 높은 고준위방폐물의 부지는 적어도 수천만 년 이상 인간생활권과 완벽하게 격리될 수 있는 지질 조건을 갖춘 적지여야 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과거 아홉 차례에 걸친 중저준위방폐물 처분장 부지선정 과정에서 지질조사를 수행한 정보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고준위방폐물 처분부지는 지하 1㎞ 깊이의 300만 평 이상의 면적에서 처분동굴 건설을 포함해 적정 지질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의 각종 지질요소에 대해 예정부지 현장 실사와 정밀조사, 수많은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

12년이라는 기간 내에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 조사가 마무리되려면 수많은 전문가가 참여하여 끊임없이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이다. 고준위 방폐장은 방폐물을 안전하게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친환경 최첨단시설이다. 우리 국토와 국민의 안전은 물론 후대까지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물려줄 수 있도록 빈틈없이 준비돼야 한다. 12년이란 기간은 결코 길지 않다.

김 규 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