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형태라 생명체 없어, 행성 도는 위성엔 바다 있을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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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14면

케플러 1647b 행성이 두 개의 별 주위를 공전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밝은 두 개의 별 가운데 작은 검은 점이 1647b 행성이다. 두 별 중 하나는 우리 태양보다 조금 크고, 다른 하나는 태양보다 조금 작다.

밤하늘 백조자리 근처에서 쌍성계를 공전하는 가장 큰 행성이 발견됐다. 지난 13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샌디에이고주립대 연구팀이 지구에서 3700광년 떨어져 있는 쌍성계에서 새로운 행성 케플러 1647b를 확인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쌍성계를 이루고 있는 두 별은 희미해서 눈으로 볼 수는 없다. 하나는 태양보다 조금 큰 별이고, 다른 하나는 태양보다 조금 작은 별이다.


우주의 별은 대부분 쌍성으로 태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별의 크기가 비슷한 경우보다는 주성(主星·principal star)에 해당하는 별과 그보다 작은 동반성(同伴星·companion star)으로 구성된 경우가 더 많다. 두 별 사이의 거리는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인 1AU(천문 단위·1AU=약 1억4960만㎞) 정도로 가깝기도 하지만 두 별 사이의 거리가 수백AU만큼 떨어져 있기도 하다. 두 별 사이의 거리에 비해 지구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크다 보니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쌍성은 드물다.


아주 희귀하게 두 별 사이가 1광년 정도 떨어져 있어 눈으로도 두 별을 확인할 수 있는 안시쌍성(眼視雙星·visual binary)도 있다. 북두칠성 손잡이 부분 두 번째 별 미자르의 오른쪽에는, 시력이 1.0 이상인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희미한 알코르가 있다. 1617년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 두 별이 수천 년을 주기로 공전하는 쌍성임을 알아냈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쌍성계를 이루는 두 별은 성능이 좋은 망원경으로도 하나의 별로 보인다. 최첨단 분광장비나 미세한 밝기의 변화를 관측할 수 있는 정밀 기구를 사용해야 쌍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1 영화 ‘스타워즈-새로운 희망’에서 두 개의 태양이 지는 장면.

2 미 항공우주국이 2009년 쏘아올린 케플러우주망원경. 지구에서 6500만㎞ 떨어진 태양 궤도를 돌며 외계 행성을 찾는 역할을 하고 있어 ‘행성 사냥꾼’으로 불린다.

목성이 태양계의 또 다른 별이었다면태양에는 동반성이 없다. 만일 목성의 질량이 지금보다 100배 정도 컸다면 목성은 태양과 함께 우리 행성계를 밝히는 두 번째 별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목성 자리에 동반성을 놓으면 그 사이에 위치한 지구는 안정적인 궤도를 공전하기 어렵게 된다. 무엇보다 전체 태양계에서 물이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 서식 가능 구역(habitable zone)을 벗어나지 않고 공전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지구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이 된다는 의미다.


동반성을 태양에서 더 먼 거리에 놓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2013년 미 워싱턴대 네이선 카이브(Nathan Kaib)와 동료는 가상공간에 태양계를 놓고 먼 거리에 작은 동반성을 궤도에 올려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처음에는 모든 행성들이 정상적인 궤도면을 돌지만 목성·토성·천왕성 그리고 해왕성 등 무거운 행성이 먼저 정상 궤도면을 이탈해 인터스텔라 지역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작은 행성들 일부도 크게 타원으로 변형된 궤도를 돌다가 태양계를 벗어나게 된다.


1977년 개봉된 ‘스타워즈-새로운 희망’ 편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는 두 개의 태양이 석양으로 지는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이 타투인 행성이 가능하려면 우선 두 개의 태양 주위를 안정적으로 공전하는 행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공전 궤도면이 가급적 원형에 가까워야 한다. 혜성처럼 극단적인 타원 궤도를 돌 경우에는 공전주기 중에 생명체 서식 가능 구역을 이탈하는 시기가 오게 된다. 만약 지구가 주기적으로 명왕성 정도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온다면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은 바로 멸종되어 버릴 것이다.


루크가 걸어가고 있는 지평선 너머로 지는 두 개의 태양을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개의 태양이 함께 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두 별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이렇게 두 별 사이의 거리가 크지 않은 쌍성계에 있는 행성도 원형에 가까운 안정적인 궤도면에서 공전할 수 있다. 이렇게 두 별 주위를 공전하는 P형(P-type) 쌍성계 행성은 지금까지 29개가 발견됐다. 이번에 발견된 케플러 1647b 행성도 이 P형 쌍성계 행성이다. 행성의 나이가 지구 나이와 거의 같은 44억 년인 것을 보면 이 행성은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안정적인 공전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케플러 1647b를 묘사한 그림. 크기와 질량이 태양계 목성과 거의 같다.

행성 나이, 지구와 거의 비슷한 44억 년 NASA가 공개한 상상도에서는 별의 표면을 통과하고 있는 케플러 1647b 행성을 볼 수 있지만 이 장면이 직접 관측된 것은 아니다. 케플러우주망원경 같은 정밀한 관측 장비로도 별의 표면을 통과하는 행성의 뒷면을 이렇게 선명하게 볼 수는 없다. 이 관측은 두 별의 밝기를 주기적으로 관측한 자료를 분석해 두 별 사이의 질량과 간격, 그리고 행성이 존재할 가능성 등을 수학적으로 계산한 후에 전체 쌍성계를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작은 지구형 행성보다는 별의 밝기와 운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큰 행성들이 더 쉽게 발견된다. 특히 쌍성의 경우 홀로 존재하는 별보다는 수치해석이 더 복잡해서 상대적으로 거대한 행성들 위주로 발견되고 있다.


케플러 1647b 행성도 지구보다 질량이 1320배 정도 더 큰 행성이다. 생명체 서식 가능 구역에서 공전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거대한 가스 형태의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행성의 주변을 도는 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목성 주변에는 현재 67개 정도의 위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위성 중에서 유로파는 표면이 얼음층으로 뒤덮여 있으며 달보다 조금 작다. 이 얼음층은 손질이 잘된 빙상장처럼 표면이 매끈하다. 얼음 표면 아래 액체 상태의 물질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목성과 유로파 사이의 자기장 상호 작용을 분석하면 유로파 내부에 전기를 전달하는 전해질이 녹아 있는 물이 있다는 것도 유추할 수 있다. 만약 이 전해질이 소금이라면 유로파는 얼음층 아래에 지구의 바다와 같은 대양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 바다의 깊이는 대략 100㎞에 이른다.


목성형 행성에 가까운 케플러 1647b 자체에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지만 목성 주변으로 위성이 도는 것처럼 케플러 1647b도 많은 위성을 거느리고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일부는 유로파처럼 바다가 있는 위성일 수도 있다. 목성은 생명체 서식 가능 구역에 위치하고 있지 않아서 유로파의 표면이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하지만 생명체 서식 가능 구역을 이탈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전하는 케플러 1647b의 위성이라면 얼음이 아니고 물결치는 바다로 덮여 있을 수도 있다. 그 바다 속에서 생명의 존재를 기대할 수도 있다.


HW Vir은 한국인이 발견한 쌍성계 행성지금까지 발견된 29개의 P형 쌍성계 행성 중에는 한국이 만든 망원경으로 한국인이 직접 찾은 HW Vir 쌍성계의 행성도 있다. 한국에서 최초로 건립된 소백산천문대에는 (현재 연구용으로는 활발하게 사용되지 않는) 구경 61㎝의 소형 망원경이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의 이재우·김승리 박사와 충북대 김천휘 교수팀은 이 망원경을 이용해 2000년에서 2008년까지 9년간 관측한 자료를 분석해 두 개의 태양이 뜨는 타투인 행성을 2009년 발표하기도 했다.


이때 발견된 HW Vir 쌍성계 행성은 생명체 서식 가능 구역을 공전하는 행성이 아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P형 쌍성계 행성 중에서 생명체 서식 가능 구역을 공전하는 행성은 이번에 발견된 것까지 포함해 모두 5개 정도에 불과하다.


홀로 있는 별과 짝을 이루고 있는 쌍성을 넘어 세 개 이상의 별이 하나의 계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짝을 이루고 있는 쌍성계 주변을 공전하는 제3의 별이 있다면 가장 쉽게 세 개의 태양을 가진 행성계를 구성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바깥쪽을 공전하는 별 주변에 지구와 같은 암석행성이 있다면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런 경우 생명체 서식 가능 구역이 확장돼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별에 존재하는 생명이 있다면 그 환경은 지구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케플러 1647b 행성의 경우 공전주기가 1107일로 확인됐다. 홀로 존재하는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에서는 1년 전과 올해 계절이 큰 차이 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케플러 1647b 행성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두 태양의 상대적 위치가 같지 않을 것이다. 이런 행성에서 식물을 재배하려면 농부들이 모두 천문학에 대한 조예가 아주 깊어야 언제 씨앗을 뿌릴 수 있을지 알 수 있다.


특히 세 개의 별이 뜨고 지는 별에서는 마치 달 표면이 항상 지구를 향해 있듯이 행성의 한쪽 면이 특정 별과 항상 마주할 가능성도 있다.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밤이 없고, 따라서 수면을 취하기 힘들 것이다. 앞으로 ‘스타워즈’에 타투인과 같은 쌍성계를 공전하는 행성이 나온다면 지금까지 알려진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영화의 장면에 옮겨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번 NASA의 발견은 상상 속 우주와 실재하는 우주 사이의 간극을 한번 더 좁혀놓는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송용선?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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