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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로 풀어내는 베토벤의 인생, “거장의 머릿속이 들여다보여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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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14면

미국의 시골마을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열두 살 소년은 꿈을 품었다. 지역의 음악 축제 오디션을 위해 찾아간 유명 비올리스트의 집에 붙어 있던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 연주회’ 포스터는 소년에겐 까마득히 올려다 봐야하는 꿈이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소년은 그 꿈의 무대에 서게 됐다.


그 사이 손에 든 악기는 비올라로 바뀌었지만, 비올라 연주자로선 드물게 미국의 저명한 음악상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수상하고 그래미상의 베스트 솔리스트 부분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권위 있는 음악 월간지 『스트링스(Strings)』가 ‘드림팀’이라 극찬한 현악4중주팀 ‘에네스 콰르텟’의 멤버로서, 어머니의 고향에서 매년 자신이 예술감독으로 참여하는 클래식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무대다. 올해 8번째 시즌을 맞은 디토 페스티벌에서 6월 25일부터 7월 3일까지(예술의전당 IBK챔버홀) 6회에 걸쳐 베토벤이 남긴 16편의 현악4중주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38) 얘기다.

에네스 콰르텟 연주 모습. 왼쪽부터 제임스 에네스(제1바이올린), 에이미 슈워츠 모레티(제2바이올린), 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로버트 드메인(첼로)

그가 들고 온 악기 케이스는 매우 낡아 있었다. 악기에선 그 자체로 예술작품 같은 아우라가 풍겼다. 촬영을 위해 ‘섬집아기’를 연주하자 어둡고 묵직한 음색이 침묵보다 고요하게 들려왔다. 리처드 용재 오닐이 ‘꿈의 무대’에서 연주할 악기는 소년시절 그에게 처음 꿈을 심어준 비올리스트 앨런 이글리친이 얼마 전 물려준 악기다. 16세기 이탈리아 장인 가스파로 다 살로가 제작한,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명기다.


“어릴 때 처음 공적인 경험을 함께했던 악기예요. 앨런은 제가 음악가가 되는데 큰 영향을 끼친 분이죠. 그가 워싱턴주에서 매년 주최하는 ‘올림픽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하려면 몇 천 달러가 드는데, 저는 장학금을 받고 일을 했어요. 악보를 넘기기도 하고, 공공 콘서트에서 연주도 했는데, 제 악기가 공연 직전 줄이 끊어진 거예요. 앨런이 자기 악기를 건네줘 공연을 할 수 있었죠. 인생이란 순환하는 것 같아요. 80대인 앨런이 작년에 뇌졸중이 와서 연주자로서 매우 힘든 전환점을 맞았는데, 그의 악기로 베토벤을 연주하게 돼 큰 영광이에요.”

그는 이번 연주에 맞춰 책까지 발간했다. 15일 출간된 『나와 당신의 베토벤』(오픈하우스)은 그가 25년 동안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을 모두 완성하는 과정에서 함께한 사람들을 각각의 곡에 매치시켜 풀어낸 내밀한 인생사이자 현악4중주에 담긴 베토벤의 사상과 사연을 흥미롭게 엮어낸 책이다.


“‘베토벤’하면 승리의 느낌이 나는 거대한 곡들을 떠올리지만, 현악4중주에는 가장 사적인 감정이 담겨있고, 그의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그저 거인 같은 사람인 것 같지만, 그도 힘들어했죠. 16곡 전체를 다 들어보면 그 머릿속까지 들여다보는 느낌이에요. 청력을 잃고 머릿속에만 갇혀있는 마음이 어떨까요. 음악가로서 제일 중요한 청력을 뺏겼으니 상상 못할 고통일 거예요. 자살도 생각했지만 포기하는 대신 능력껏 전진하겠다는 마음까지 전해지죠.”


25년 만에 꿈을 이루게 됐으니 긴장도 되겠어요. “16곡은 정말 큰 도전인데, 다행히 최근 유럽과 북미 투어에서 나눠서 연주하면서 연습이 됐어요. 그런데 베토벤은 연주자에게 모든 걸 요구하는 작곡가거든요. 그의 음악에 헌신하지 않으면, 초기곡들 경우는 마치 모차르트 곡을 잘못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죠. 절벽까지 치달아 급정지하거나 너무 답답해서 벽에 머리를 박는 것 같은, 정말 많은 감정을 요구하고요. 어떤 친구는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음악 자체가 너를 갈아서 뭉개 버릴 것’이라고 표현하던데, 딱 맞는 말 같아요.”


어떤 곡이 가장 까다로운가요. “새 곡을 배울 때마다 늘 ‘이게 제일 어렵다’고 확신했죠(웃음). 초기곡들은 고전음악에 대한 이해와 기교가 완벽해야 하고, 중기곡들은 스테로이드를 맞은 듯한 ‘근육질 음악’이라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후기곡들은 죽음에 가까운 시점이라 마치 다른 세상 음악 같고요. 머릿속에서 우주의 무한함을 찾아냈다고나 할까. 스트라빈스키도 133번 ‘대 푸가’에 대해 ‘영원히 컨템포러리로 남을 가장 완벽한 현대음악’이라고 말했죠. 요즘 음악은 2년 전 것도 낡은 느낌인데, 그 시대에 이런 작품을 쓴 게 믿을 수 없을 정도에요.”


베토벤의 모순된 내면을 그대로 담고 있으니 연주하기에도 혼란스럽겠어요. “그의 곡들은 모두 디테일이 엄청나요. 후기에는 음정 4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걸 이해해야 구조적으로 접근할 수 있죠. 베토벤이 지은 건축물을 이해하는 일이라고나 할까. 아주 작은 구조로 쪼갠 걸 모아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낸 게 그의 마법이죠. 디테일에 매달리다 보면 생각에 사로잡혀 끙끙대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받은 선물 중 하나가 우리 엄마 유전자거든요. 힘들어 하다가도 살아있는 게 기쁘다며 털어내는 능력요. 저도 그렇게 웃어넘기곤 해요.”


책을 보니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을 지인들 이야기로 풀었는데, 어머니 얘기는 없네요. “책에 언급한 분들은 콰르텟 멤버 외에는 거의 돌아가신 분들이에요. 그리운 친구들에게 헌정하는 의미죠. 엄마는 돌아가실 게 아니라서 일부러 뺐지만(웃음), 엄마에게는 18-6번이 어울려요. 아주 테크니컬한 악장으로 시작해 아름다운 느린 악장도 있고, 스케르쪼에선 세상에서 제일 복잡한 리듬도 나오고, 멜랑콜리 악장에는 비극의 느낌도 나고, 그러다 신기하게 마지막 악장에선 재미있게 끝나는, 그런 다양한 면이 엄마를 닮았어요.”


“베토벤 음악은 영원한 컨템포러리” 2006년 결성돼 ‘클래식계 아이돌’로 군림해온 앙상블 디토는 올해로 10번째 시즌을 맞았다. 8회째를 맞은 디토 페스티벌은 ‘베토벤: 한계를 넘어선 자’를 테마로 12일부터 7월 3일까지 기돈 크레머, 비엔나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 해외 아티스트와 임동혁·문지영·신지아 등 젊고 재능있는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진행중이다. 앙상블 디토는 28일 열리는 시즌10 콘서트 ‘혁명가들’을 끝으로 스테판 피 재키브(바이올린)와 마이클 니콜라스(첼로)를 떠나 보내고 새로운 팀을 꾸리게 된다.


‘앙상블 디토’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딱 10년 전 요맘때 저쪽 테이블에 앉아서 프로젝트를 결정했죠. 그동안 창밖 풍경은 많이 바뀌었네요. 여기 다시 와서 그 얘기를 하는 게 인생의 사이클 같아서 재밌네요. 그때 제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크레디아 정재옥 대표에게 ‘실내악을 가져오고 싶다’고 제안했죠. 당시 한국에서 실내악은 클래식 우선순위 제일 아래였거든요. 저는 실내악을 통해 음악 커리어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멤버가 자주 바뀌는데. “전 비올라 연주자라 레퍼토리가 한정적인데, 디토까지 현악4중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어요. 제 큰 즐거움 중 하나가 링컨센터 체임버뮤직 소사이어티 단원 활동인데, 레퍼토리가 다양하거든요. 목관5중주건 현악5중주건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몹시 흥미로웠어요. 링컨센터에 어린 나이에 중요 멤버로 고용된 것도 제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쳤죠. 그들은 어린 저에게 최고 연주자들과 같은 페이를 줄만큼 다음 세대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어요. 젊은 연주자의 실력을 인정해주고, 자신감을 준 거죠. 저도 그걸 디토를 통해 확산하고 싶었어요. 다행히 10년간 그 역할을 괜찮게 해온 것 같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사람을 초대할 거예요.”

“디토 프로젝트는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한 그는 15살 때 우연히 잡아 본 비올라가 신체 조건에 딱 맞는 악기란 걸 깨닫게 되면서 비올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화려한 주인공을 도맡는 바이올린을 포기하면서 망설임은 없었을까. “내겐 음악 자체가 동기부여”라며 단호히 고개를 젓는다.


“음악은 제게 만족감을 주고, 에너지를 집중하고 감정을 표현하게 해주죠. 비올라라고 다를 건 전혀 없어요. 저는 음악을 재창조하는 사람이고, 진짜 위대한 사람은 작곡가들이죠. 보이지 않는 걸 낚아채서 본인보다 대단한 음악을 창조해 낸 사람들이니까요. 음악은 너무 성스럽고 특별해서 제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쓸 수 없어요. 음악으로 인해 제가 살 뿐인 거죠. 제 헌신으로 음악에 생명을 불어넣어, 청중에게 곡이 처음 쓰여졌을 때와 같은 감동을 드리는 게 꿈이에요.”


음악 자체와 젊은 세대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MBC 다큐 프로그램 ‘안녕?! 오케스트라’에서 다문화가정 아이들과 함께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안녕?!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는 안산문화재단에서 계속되고 있고, 그도 지난 2월 협연을 하는 등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커플링을 선물하며 적극 애정공세를 하던 소녀의 근황을 물으니 “미경이는 아쉽게 그만뒀다”며 아이들이 음악을 포기하게 만드는 한국의 교육현실에 대해 강한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이 프로젝트의 힘든 면은 한국인만 이해할 수 있어요. 중학교를 가면 대학에 가기 위한 경주를 하느라 다른 활동을 포기하는데, 너무 비극적이에요. 수학점수가 나쁘면 ‘SKY’를 못 가고, 그러면 좋은 직업을 못 구한다니요. 미국서 자란 저로서는 어린 아이들이 압박받는 걸 이해할 수 없어요. 한국 교육시스템이 강력하다고 하지만, 다양한 잠재력을 서포트해 주지 못하는 시스템이에요. 음악교육도 그래요. 한국에서도 요요마처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악가가 나오려면, 기술만 요구할 게 아니라 시험점수 이상으로 깊이 있는 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크레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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