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표적은 일본…한국은 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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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요즈음 한미경제관계에서는 미국의 대한시장개방압력 때문에 긴장감마저 돌고 있다. 정부는 곧 상품·지적소유권·금융과 보험등 서비스분야등 각 분야에 대한 개방스케줄을 확정, 발표할 예정으로 있다. 대외경제 창구의 총책인 김기환 해외협력위원회 기획단장을 만나 최근 한미경제현안에 대한 「현상진단」을 해보았다.
-요즈음 와서 미국이 왜 이리 야단입니까.
▲야단이긴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것이니 만큼 놀랄 일은 아닙니다. 금년 봄부터 미국의 이러한 조짐을 지적하면서 대처방안을 강구하자고 주장해왔지만 정부안에서조차 『무슨 소리냐』며 『버틸 때까지 버텨야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어떠한 점이 예상됐었다는 말입니까.
▲최근의 미국개방압력이 종전과는 다르다는 점이었지요. 미국내의 상황을 살펴보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그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측에서 보호무역주의 강화정책을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삼고있는가 하면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2차대전 이후 막강했던 영향력에서 쇠퇴를 거듭하자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거지요. 미국이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개방정책 자체에 대해 맹렬한 비판이 누적되고 있는 셈이지요.
-그런데 하필이면 한국과 같은 개도국을 꼬집어서 겨냥하고 있는데….
▲그전 같으면 미국이 한마디만 하면 모든 나라들이 고분고분 모여서 협정도 체결하고 세계교역질서도 미국이 의도했던 대로 개방주의를 기초로 풀어나갈 수 있었지만 이젠 그게 안되게 되었지 않습니까.
종래의 다국간 협정 같은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졌다는 것이지요. 이러자 미국은 우선적으로 몇몇 나라들부터 골라서 본때를 보이자는 식의 정책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미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에 대해서 『미국상품의 수입을 개방하지 않으면 미국시장에도 못 들어오게 하겠다』는 식이지요. 미국이라는 방대한 시장자체를 새로운 무기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타기트가 일본이고 한국을 비롯한 몇나라가 여기에 덤으로 추가된 셈이지요. -미국의 무역적자가 워낙 막대하니까 그럴 만도 합니다만 만약 무역적자가 해소되어갈 경우 보호무역주의 경향은 다소 완화되지 않겠습니까.
▲엄격히 말해 최근의 보호무역주의와 무역적자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사실 무역적자확대문제는 미국정부의 관리들이나 경제학자들의 관심사항이지 일반국민이나 기업 쪽에서는 별달리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문제이니까요. 따라서 보호무역주의를 팽배시키고 있는 요체는 무역적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상품들이 자기네 나라에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망하는 기업이 속출하는 반면 자기네들은 다른나라에 나가 마음대로 장사를 할 수 없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의 전통적인 개방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십니까.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최근의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가 이론적인 전개를 떠나 국민감정으로 비화되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기네 딴에는 미국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도덕심이 투철하다고 자부해온 터인데 다른 나라들이 터무니없이 불공정 (Unfail)행위를 일삼는 것은 더 이상 묵과해선 안 된다는 식으로 국민감정이 촉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작권이나 상표권 등입니다.
저 사람들 생각으로는 자기네가 애써 쓴 책이나 상표를 다른 나라가 도둑질해서 베껴먹는 것이라고 야단이지 않습니까. 이 같은 입김이 의회로 작용해서 갖가지 규제법안이 양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3백여개의 보호무역주의법안이 미의회에 상정되어 있는데 이것들의 상당수가 통과된다고 보십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그러나 섬유규제법을 비롯해 2∼3개는 통과될 전망입니다. 물론 통과되더라도 행정부 쪽에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예상됩니다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보호무역주의가 현실적인 대세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법안자체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행사한다손 치더라도 행정부 나름대로의 체면치레에 해당하는 규제조치를 분명히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레이건」대통령이 한국더러 보험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보복조치를 취하겠다는 발표가 바로 그런 예입니다.
-과연 이 같은 보호무역주의 추세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산업구조재편이 원만하게 성공될 때까지 이들의 보호무역주의는 계속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산업구조재편과 교역증대가 상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민주당이 주축이 되어서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산업정책의 측면에서 수입을 규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소득정책차원에서 수입이 늘어나면 실업자가 많이 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김단장 자신도 개방론자 아니십니까.
▲「개방」과 「보호」를 양자택일하라면 나는 분명히 개방론자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대미교역문제를 풀어나가는데는 개방이니 보호니 하는 선택의 차원을 떠나 우선 상대방인 미국의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해야지요. 욕을 얻어먹어 가면서까지 앞장서서 개방론을 주장해온 것도 그래서입니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 보복이 시간문제라고 판단했고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것을 어떤 형태로든 납득시켜야한다고 생각했었던 거지요. 결국 그러려면 무작정 우리주장만 되풀이하면서 버틸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더구나 어차피 개방할 것이라면 우리가 이니시어티브를 쥐고 스스로 해나가자는 주장을 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입장만 너무 생각한 나머지 너무 개방을 서둔다는 지적이 많지 않습니까.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물론 우리 형편을 감안해서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데는 동감입니다. 더구나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수입개방을 마치 미국에 대한 굴복으로 여기는 국민감정이 팽배한 마당에 쉽사리 밀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예컨대 미국측의 요구는 퍼스널컴퓨터를 비롯해 주요품목을 80년까지 모조리 수입 개방하라는 것이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대처방안은 무엇입니까.
▲작년 봄부터 시작한 예시제를 각부문에 걸쳐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즉각적인 개방을 요구하는 상대방에게도 설득력이 있고 국내기업 스스로에도 수입개방에 대비하는 준비기간을 미리 알려주는 셈이니까요.
-미국의 압력이 없었더라도 수입개방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주장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동안 투자의 왜곡현상을 비롯해 보호정책의 대가를 얼마나 비싸게 치러왔습니까.
-그러나 자동차나 전자제품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나마 국내산업에 대해 보호를 해왔기 때문에 수출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게 된 것 아닙니까.
▲어느나라고 유치산업에 대해서는 보호정책을 쓰는 게 당연합니다. 문제는 과잉보호·무한정보호에 있습니다. 예컨대 자동차산업에 대한 정부의 보호정책이 지금까지 15년동안 계속되어 왔다고 칩시다. 만약 자동차산업에 대한 보호정책을 시작할 당시에 『보호기간은 15년』이라고 못박아 예시를 했었더라면 지금 국내자동차의 품질이나 경쟁력은 어떻게 됐겠습니까. 당연히 훨씬 좋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됐을 겁니다. 결국 기약 없는 과잉보호를 해온 나머지 비싼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셈이지요.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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