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실험식당 ‘비밀’ 김정우 대표, 음식점 창업 꿈꾸는 청년과 주방 공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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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김정우 대표. ‘벌(Bee)처럼 협동해서 만든 식사(Meal)’란 의미와 ‘ 비밀스러운 공간’이란 의미를 담았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시 어은동 ‘비밀(Bee Meal)’은 독특한 식당이다. 매장 간판에 커다랗게 ‘Cook the Opportunity(기회를 요리하라)’라고 적혀 있다. 음식점 창업을 꿈꾸는 청년 요리사들이 주방을 공유해 각자 자신이 개발한 메뉴를 판매하고 고객들의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 공간이다. 이곳의 대표 김정우(20)씨는 “공유를 통해 비용을 줄이면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곳”이라고 설명했다.

각자 개발한 메뉴 팔 기회 제공
고객들 “매일 다른 요리 신선”
청년 요리사 100여 명 거쳐가

김씨는 현재 충남대 유기소재·섬유시스템공학과 2학년 학생이다. 지난해 1학기에 학교에서 교양수업 ‘창업과 법률’을 들으며 만난 학생 4명과 함께 팀을 이뤄 지난해 10월 ‘비밀’ 문을 열었다.

“음식점 90%가 창업 2∼3년 만에 망한다더라고요. 또 요리사들이 자기 음식점을 내기 위해 돈을 모으려면 20년 정도 걸린다고 하고요. 경험이 없어 창업을 망설이는 요리사들에게 자신의 음식을 팔아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매일 다른 요리사가 매일 다른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음식점으로 운영하면 소비자들에게도 신선하게 보일 것이란 기대도 컸다. 다섯 명이 500만원씩 갹출해 총 2500만원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김씨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학점 4.0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연이율 7.2%로 빌렸다”고 했다. 그 돈으로 어은동 주택가 골목의 66㎡ 크기 상가를 얻었다. 요리사는 우송대·배재대 등 대전 지역 대학들의 관련 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집했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으며 ▶로컬푸드를 이용한다는 원칙에 동의한 100여 명의 요리사가 그동안 ‘비밀’ 주방의 주인이 됐다. 이들의 레시피에 따라 식재료를 구입하고 고객 반응을 모니터링하는 일 등은 다섯 명의 운영팀이 맡았다.

장사는 곧잘 됐다. 개업 첫 달 300만원 수준이었던 월매출이 이제 800만∼1000만원까지 올랐다. 김씨는 “ 지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충남대와 KAIST 딱 중간에 위치한 곳이어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는데 ‘비밀’이 생기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익을 내기는 어려웠다. 한 끼 밥값 6000∼1만1000원의 40∼60% 정도가 재료비로 들어가는 데다 체계적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기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해 초 대전시의 공유기업지정사업과 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육성사업으로 채택돼 지원을 받고 적자를 겨우 면했다. 수익이 나면 요리사들과 운영팀이 나누고 있는데, 지난 8개월 동안 김씨가 받은 돈은 35만원에 불과했다. 부모님에게 빌린 돈의 이자 내기도 빠듯한 액수다.

그는 “앞으로의 과제는 지속 가능성”이라고 했다. “인건비를 안정적으로 충당할 정도의 수익은 내도록 회계·홍보 등 경영 관리에 집중할 계획”이라면서 “지속 가능한 공유 주방 시스템을 만들어 다른 지역에도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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