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대…그들은 누구인가|출세보다는 「삶의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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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대는 우리의 밝은 희망이다. 그들은 의욕과 순수성으로 이상을 추구한다.
청년세대는 새로운 창의력과 개혁의 의욕으로 기성세대가 관리하는 현대의 사회질서에 변화를 시도하는 미래의 세력이다.
기성세대가 사회질서 담당세력이라면 청년세대는 사회변동 담당세력이다 현재보다 나은 내일이 그들에게 달려있기에 그들의 미숙성과 반항과 일탈은 한편으로 우리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기도 한다.
한국의 20대-그들은 누구인가. 오늘을 어떻게 살면서 어떤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가. 20대가 발랄하게 살아 숨쉬는 현장을 본다.

<청바지에 t셔츠차림>
50여년 전에 비해 요즘 20세는 몸차림부터가 크게 달라졌다. 등교하는데 학생들은 대부분 운동화에 청바지·T셔츠차림이다. 허진군(21·서울대신문학과2년)은 『신사복은 물론이고 구두를 신으면 마치 옷이나 신발에 자신이 갇혀있는 것 같은 거부감을 느낀다』고 했다. 한때 유행했던 장발은 단정하고 깔끔한 형으로 바뀌었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차림새로만 보면 거의 혼성시대다. T셔츠에서 남자차림보다 몸매가 돋보일 뿐 신발까지도 대부분은 구별하기 어렵다.
회사원인 송순애양(20·서울마천동)은 『회사출근 때 가장 싫은 것이 정장차림』이라며 『쉬는 날은 청바지와 T셔츠에 N표 신발을 신는다』고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김밥이나 순대·떡볶이를 사먹는 즐거움도 정장을 하고 나면 갖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변.
25세 이상의 후반기 20대는 그러나 초반과 달리 정장으로 옮아가고 있다. 편리한 캐주얼차림이 좋기는 하지만 점점 직장의 정장분위기에 적응하게된다. 양복에 구두를 신게되고 어른이나 동료간의 인사도 정중해진다.
정장에 머리도 짧게 깎은 이욱씨(29·H건설사원)는 『복장이 바꿔면서 행동도 조심하게돼 직장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실 때도 좀처럼 과음은 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학생 때는 활동에 편한 것을 기준으로만 옷차림을 했다는 명미선양(26·H호텔직원)은 『정장을 계속했더니 청바지보다 여자답고 예뻐보이는 것 같다』고 했다. 새 옷을 입고 처음 만난 동료들이 『옷이 예쁘다』는 칭찬을 할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풍요」속에 자란 세대>
일제시대, 해방후의 혼란, 6·25전쟁을 겪지 않은 20대는 「가난과 빈곤」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를 체험하지 못했다. 김인회교수(연대)는 오늘의 20대를 가리켜 『풍요 속에 자란 세대로 가난을 경험하지 않아 어려움에 연습이 덜된, 그래서 활력이 약화된 시제품세대』라고 한다. 몸집은 크지만 지구력은 약하다.
한편 물질적 성공을 인생의 제일의 목표로 삼고 「나도 한번 남부럽기 않게 잘 살아보자」는 한에 맺혔던 기성세대를 오늘의 20대는 호되게 비판한다. S대 김모군(21·경영학과3년)은 『기성세대는 모든 현실을 돈과 힘의 기반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들어 복부인·투기·사기·횡령·공갈에 황금만능주의·한탕속성과 쾌락주의가 갈수록 만연되고 있는 것도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질타했다.
전후세대인 20대는 물질적으로 비교적 풍요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평범하지만 인간으로서 충실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임희섭교수(고대)는 지적한다.
하고싶은 것 해보고, 28세나 29세쯤에 결혼은 해야겠다는 유희미양(22·회사원)은 『고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3명과 자주 만나지만 차츰 대학생이란 점 때문에 거북해진다』며 『1천만원을 모아 스위스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아침 6시에 일어나 8시20분까지 출근, 하오6시30분에 퇴근하는 회사원 김홍씨(29·S물산)는 1주일에 2일을 퇴근 후 영어회화 학원에 나간다. 국제화 시대에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다.
회사원 이정옥양(24·서울화양동)은 휴일이면 자전거를 타거나 볼링을 한다.
「테레사」수녀는 그녀의 우상이다. 현재로는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 재활원이나 특수학교 같은 것을 운영했으면 하는 것이 꿈이다.
여자의 경우는 결혼후 남편이 소신을 갖고 자기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출세해서 권력을 잡겠다거나 돈을 벌어 큰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작은 세계에서나마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자기발전에 모든 것을 걸고있는데 20대의 기성세대와는 다른 푸른 꿈이 있다.

<취업과 결혼이 과제>
졸업 후 인생을 걸만한 일을 구한다는 것은 대학생에게 있어서는 특히 가장 심각한 과제에 속한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졸업을 「결혼조건」쯤으로 생각했던 여자들까지 진로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고민한다고 김인회교수(연대)는 말했다.
여대생 이진선양(20·H대 경영학과1년)은 『졸업 후에도 전공을 살려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가장 큰 꿈이다』라며 『대기업이나 은행같이 「좋은 직장」보다는 내 아이디어가 통하고 실현될 수 있는「일자리」를 찾고싶다』고 했다.
이상호군(23·S대 기계공학과4년)은 『군대문제에다 최근에는 취업난까지 겹쳐 고민이 많다』면서 『번드레한 직장보다 내가 평생 매달릴만한 일거리를 찾아 당장은 대기업에 취직을 하더라도 나의 일을 20대가 끝나기 전에 시작하겠다』고 했다. 「알아주는 직장」보다 「몰두할 수 있는 일」을 그들은 찾고있다.
『월급10만원을 받아 8식구 생계에 6만원을 보탠다』는 강광희양(22·구로공단 S물산)은 8시간 근무 후 4시간을 영등포여고부설 산업체특별학급(3학년)에서 공부를 하고, 수업 후에 부기학원에서 1시간 부기를 배운다.
강양은 『직장생활4년4개월에 10만원 월급은 좀 적은 것 같다』며 『1만5천원을 학원비에 쓰고 나면 쓸 돈도 없지만 과장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청바지에 운동화차림의 강양은 『대학까지 진학해 교사가 되겠다』며 『학생들의 생각은 알지만 사회가 혼란해질 만큼의 격렬한 시위를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양은 『언니와 벌어 8식구를 먹여 살리는 처지여서 그런지 외채는 얘기만 들어도 가슴이 떨린다』면서 『그게 다 정치가 잘못되고 부유층이 사치생활을 해서 그런 것 아니냐』고 쏘아붙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구두를 닦아 월30만원을 버는 이봉기군(24·서울 신내동)의 꿈은 『돈 좀 벌어서 고향인 양평에 논을 사 농사짓겠다』는 것이다.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면 형사가 됐을 것이란 김군은 『돈 벌면 나처럼 불우한 사람을 모아 서울근교에 직업학교 하나 짓겠다』며 『오늘날 20대는 남보다 좀 불우하다고 금방 탈선하고 참을성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군의 18번은 나훈아의 『울긴 왜 울어』.
취업문제와 함께 후반기가 되면 누구나 홍역을 치르듯 20대는 한차례 결혼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의 경우는 자못 심각한 경지를 겪는다.
『친구가 하나 둘 시집을 가고 신혼생활이라도 엿보게 되면 시집가야겠다는 충동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많다』는 공무원 이모양(27·서울봉부동)은 『친지·친구들로부터 여러 차례 소개는 받았지만 첫번 만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만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아직 상대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대학원에 재학중인 허희숙양(28)은 『외국에 유학, 전공인 응용미술을 더 공부하고 싶은데 결혼문제가 걸려 있어 고민 중』이라며 『결혼문제를 아버지에게 전적으로 위임해놓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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