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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온 미 문학 에이전트 지트워 “한국문학은 내가 발견한 투탕카멘 무덤 속 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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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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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의 판권을 영국에 팔아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수상을 가능케 했다. 책 홍보 포스터를 들고 있다. [사진 김춘식 기자]

소설가 한강(46)의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수상은 기나긴 여정의 최종 산물일 뿐이다. 작품이 빼어난 게 가장 큰 수상 원인이지만 『채식주의자』 영국판이 나오기까지 번역·출판·마케팅 등 짧지 않은 사전 공정이 있었다는 얘기다.

유럽에 『채식주의자』 판권 팔고
번역자도 데버러 스미스로 바꿔
“신경숙 의도적 표절 아닌 실수
미국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소규모 문학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바버라 지트워는 숨은 공신이다. 10여 년 전 한국문학에 꽂혀 혼자서 해외 시장을 개척해온 그는 영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채식주의자』 판권을 팔았다. 그 자신, 한강 소설을 좋아해 한 일이다. 2011년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 진출을 성공시킨 것도 그다. 서울국제도서전 참가차 방한한 지트워를 12일 만났다.

당신이 생각하는 수상비결은.
“작품이 빼어나다. 10년 전 처음 접하고 바로 사로잡혔다. 무엇보다 제때에 딱 맞는 소설(right book at the right time)이 나온 결과다. 솔직히 경쟁작가들이 다들 유명해서 작품은 뛰어나지만 수상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내가 12년 전 한국소설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바버라, 뭐하는 거야’라고 묻곤 했다. 김영하·조경란에 이어 신경숙이 성공하면서 한국문학이 제대로 알려졌고, 2014년 런던북페어에서 한국이 주빈국이 되면서 보다 폭넓게 소개됐다. 그런 상황에서 『채식주의자』가 나온 거다.”
많은 사람이 관련돼 있을 것 같다.
“나와 조셉 리(이구용 KL 매니지먼트 대표), 세계 각국의 동료 문학 에이전트들이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영국판을 출간한 포토벨로 출판사의 책임 편집자 맥스 포터를 빼놓을 수 없다. 『채식주의자』는 다른 나라와 달리 영국·미국에서는 10년째 출간하려는 출판사가 없었다. 포터는 소설의 가치를 알아본 유일한 영미권 편집자였다. 한 작가가 자기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편집자를 만나는 일은 사랑을 찾는 일과 비슷할 거다. 편집자는 번역, 편집, 디자인 과정 등을 거쳐 아기와 같은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포터는 2013년 맨부커 본상 수상작인 『루미너리스』를 발굴했다. 국제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그가 내는 책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다. 마케팅 전략도 영리했다. 문학적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채식주의자』의 소개 블러브(blurb·선전문구)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지트워는 뉴욕의 거물 문학 에이전트 앤드루 와일리가 한강을 가로채려 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와일리는 공격적인 스카우트 행태 때문에 ‘자칼’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다. 그가 한강을 뺏어가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지트워는 올 초 영국의 출판정보 사이트 북브런치(www.bookbrunch.co.uk)에 공개 서한을 보내 경고했다. 남의 과실을 넘보지 말고 발로 뛰며 키우라는 내용이다. 

『채식주의자』 번역자를 당신이 데버러 스미스로 바꿨다고 들었다.
“번역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전 번역도 훌륭했다. 하지만 데버러 번역을 사람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았다. 반대로, 한강이 수상하자 『채식주의자』 출간을 거절했던 뉴욕의 한 편집자가 전화해 ‘좀 더 잘 검토해 볼 걸 그랬다. 하지만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
어떤 작품에 특히 어울리는 번역이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가령 『엄마를 부탁해』를 번역한 미국의 김지영씨는 『채식주의자』와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채식주의자』가 영미권에서 출간되는데 10년이 걸린 이유는.
“뭐든 새로운 게 시작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특히 미국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느린 편이다. 나는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 나 혼자 있는 거야. 이 안의 보물은 모두 내 거야’라고 되뇌이며 한국문학 해외 시장을 개척했다.”

지트워는 신경숙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17일 서울도서전 행사에서 발표할 내용이라며 신경숙 표절 논란에 대해 “실수이지 의도적 표절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필립 로스 같은 대작가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20년 전 단편이 다른 작품과 다섯 문장이나 열 문장 겹치는 일은, 영향을 주고 받은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는 될 수 있어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인들의 신경숙 표절 논란 대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신경숙이 해외 진출을 통해 한국문학에 기여한 점을 고려하면 그런 대응은 배은망덕(ungrateful)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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