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버지가 검사장” 쓰면 탈락 “할아버지 때부터 어업” 가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올해 10월 실시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부터 자기소개서(자소서)에 부모, 친·인척의 실명과 구체적인 직업·직위를 적어 제출한 응시자는 실격 처리된다. 법조인·정치인 등 유력인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도 제재 대상이다. 자소서에 성장 배경을 적는 공간은 삭제되고 학부 등 대학 이후의 경험만 쓸 수 있게 된다. 12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교육부는 이 같은 내용의 ‘입학전형 이행점검 및 평가기준(시안)’을 전국 25개 로스쿨에 최근 보냈다.

교육부, 내년도 로스쿨 입시 시안
부모·친인척 실명 땐 무조건 실격
구체적인 직장·직위 밝히면 안 돼
법조인·정치인 등 유력 직업 못 써

내년도 입학전형부터 적용될 기재 금지 내용은 부모, 친·인척의 실명이다. 응시자가 이를 기재하면 무조건 실격 처리된다. 또한 ‘OOO에 근무하신 아버지’처럼 구체적인 직장·직위를 적어도 실격 대상이다.

기사 이미지

※교육부, 2017학년도 로스쿨 입학전형부터 적용

특히 법조인(변호사·검사·판사 등), 교수, 정치인, 공직자, 언론인 같은 ‘유력 직업’을 적는 것도 금지사항이다. ‘검사장을 지낸 큰아버지’ 식으로 부모, 친·인척 관계를 드러내도 실격된다.

다만 넓은 범위의 직종을 언급하는 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응시자가 자소서에서 본인의 역경 극복 과정을 설명하면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부도를 당해…’ ‘할아버지부터 어업에 종사하여…’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실직하고…’ 식이다. 이 경우에도 법조인·정치인·공직자 등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면 감점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기사 이미지

※교육부, 2017학년도 로스쿨 입학전형부터 적용

교육부 관계자는 “현행 고입·대입 전형에 유사한 제한이 있어 이를 참조했다”고 밝혔다. 특목고·자사고 등의 자기주도학습전형은 자소서에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암시하면 10% 이상의 감점을 한다. 교육부는 금지사항을 어긴 응시자에 대한 제재 내용을 입학요강에 명시하라고 각 대학 로스쿨에 요구했다.

기존 자소서 양식에서 있던 ‘성장 배경’ 기재란도 앞으로 없어진다. 가정 환경 등을 노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신 대학 입학 이후의 경험을 기재하는 공간은 대학 판단에 따라 둘 수 있다. 응시원서에도 보호자의 비상 연락처만 적을 수 있을 뿐 보호자의 성명·근무처는 기재할 수 없다.

이번 시안은 지난달 교육부가 전국 로스쿨의 2014~2016학년도 입학전형 실태를 조사한 뒤 나왔다. 당시 조사에서 합격자 6000여 명 중 자기소개서에 법조인 등 부모, 친·인척의 신상을 밝히고도 24명이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전국 로스쿨은 교육부의 실태 조사 발표 이후 자정의 노력 차원에서 내년부터 입학전형에서 면접·자소서의 반영 비율은 줄이는 대신 법학적성시험(LEET), 외국어 성적, 학점의 비중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각 대학 로스쿨은 면접·자기소개서의 평가항목을 가치관·인성·표현력·논증력 등으로 구분해 공시하기로 했다. 불필요한 ‘스펙 경쟁’을 막고 입시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교육부 관계자는 “관련 법률은 LEET, 학부·외국어 성적을 필수 전형 요소로 정했지만 상당수 로스쿨들은 면접과 서류평가만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관련 기사
[단독] “아버지 뭐 하시는지 모르게” …로스쿨 입시 무자료 면접
② “아버지가 ○○○” 신상 밝히고도 24명 로스쿨 합격했다
[디지털 오피니언] "아버지가 법원장입니다" 내 자소서엔 절대 없을 말



교육부도 각 로스쿨을 상대로 ▶‘무자료(블라인드) 면접’, 외부 면접위원의 의무화 ▶우선 선발제도의 폐지 ▶입학생의 출신 학부와 전공, 최고·최저·평균 성적 공개 등을 이행하는지도 점검한다. 또한 입학전형 실태 조사 결과 나타난 문제점에 대한 시정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해 내년 예정된 로스쿨 평가에 반영할 방침이다.

서울 소재 사립대의 로스쿨 교수는 “정부의 평가 결과에 해당 로스쿨의 존속 여부가 달린 만큼 대학들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방 소재 대학의 로스쿨 교수는 “정부가 지나치게 많은 제한을 걸면 대학이 학교 특색에 맞는 인재를 선발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우려했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