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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바이엘·체르니, 그다음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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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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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19세기 오스트리아 작곡가가 한국 사람들의 기질을 예측이라도 했던 걸까. 카를 체르니(1791~1857)는 유독 한국에서 빅 히트를 쳤다. 체르니는 좋은 피아니스트였다. 무엇보다 베토벤 작품의 해석을 잘 해서 유명했다. 베토벤의 제자기도 했고 나중에는 좋은 피아노 선생이 됐다. 프란츠 리스트라는 명 피아니스트를 길러냈고 그 밖에도 크게 된 제자가 많았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는 ‘100ㆍ30ㆍ40’ 같은 숫자와 늘 함께 불리는 작곡가다. 우리에게 체르니는 하나의 문화 코드다. 체르니의 노하우가 들어있는 연습곡 100곡을 묶은 연습곡집 100권을 떼고 30권으로, 40권으로 가기 위해 무던히 애 썼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또 체르니 덕분에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40이라는 고지에 올라본 이라면 30에서 좌절했던 이보다 우수한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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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느라 못 보고 지나친 게 많다. 나는 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 앙코르로 체르니 30권 중 한 곡을 듣고 소스라친 적이 있다. 공들인 음색, 풍부한 페달, 적당한 강약 조절이 들어간 그 곡은 아름다웠다. 30권을 얼른 떼고 40권으로 가기 위해 숨가쁘게 연습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었다. 한때는 30-40-50이라는 피라미드형 설계야말로 아름답다 생각했다.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당장 해결할 과제도 선명했다. 약간의 경쟁심, 동년배와 비교 같은 것도 야릇한 쾌감을 불렀다. 하지만 음악을 어떻게 듣고 표현해야 하는지 여유있게 배우기는 힘들었다.

 (잘 연주하면 아름다운 체르니의 연습곡. 30권 중 4번이다. 한 피아니스트가 앙코르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때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유튜브에서는 그렇게 공들인 연주를 찾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움을 못 본 채 지나간다.)

 (이 또한 체르니의 작품이다. 기분 좋은 악상을 고전적으로 표현하는 작곡가다. 이런 작품들 역시 ‘연습곡’의 그늘에 가려 들어볼 기회가 없었다.)

 (쇼팽의 연습곡 10-1. 무대에 올릴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연습곡을 작곡한 건 쇼팽이지만, ‘연습곡’이라는 아이디어를 시작하고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건 체르니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취재를 위해 많은 국적의 피아니스트들을 만났지만 피아노 공부를 이렇게 시작하는 나라는 보지 못했다. 일제 시대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일본보다 한국에서 훨씬 고착화된 코스인 듯하다. 얼마 전 피아노를 시작한 여덟살 조카마저 ‘바이엘-체르니’의 코스에 발을 올렸다. 30년 전 나와 달라진 게 없다.

다른 걸로 시작하면 안될까. 피아노 치면서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을 거고, 화음이나 리듬 쪽에서 자유롭게 음악을 공부하는 방법도 있을 거다. 이유도 모르는 목표에 우르르 올라타 안도감을 느끼는 건 음악 교육 뿐 아니다. 한국의 ‘체르니 코스’는 뭐든 잘 하기 위해 맹렬히 정진하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털어내는 사회를 보여준다. 교향곡ㆍ미사곡 같은 거대한 작품을 포함해 1000곡 넘게 음악을 남기고도 30ㆍ40 같은 숫자하고만 짝 지워지는 체르니에게 미안한 일이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