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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병풀로 흉터치료, 쇠비름은 오메가3 원료…더 이상 잡초 아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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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Special Knowledge<620> 쓸모있는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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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기자

‘잡초(雜草)’는 농경지·도로·마당 등에서 사람이 원하지 않아도 마구 자라나는 여러 가지 풀을 통틀어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 잡초가 주인공인 전시회가 국립수목원(경기도 포천)에서 열렸습니다. ‘잡초를 보는 새로운 시각, 잡초에 반하다’란 주제로 40여 종의 잡초가 각자 이름표를 달고 저마다의 쓰임새를 알렸습니다. 잘 몰랐던 잡초의 세계를 소개합니다.

잡초는 전 세계적으로 농경지에만 2000~ 3000종, 국내에선 600여 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동일한 잡초가 여러 서식처에서 자라나는 특성상 발생장소에 따라 잡초를 분류하긴 어렵다. 잡초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실제로 일부 잡초는 작물 생산량을 감소시킨다. 한정된 양분을 놓고 농작물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또 일부 잡초의 꽃가루는 알레르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안 키워도 마구 자라나는 풀 통칭
국내 600여 종…식물자원 인식 필요

하지만 ‘잡초 전시회’를 마련한 국립수목원 이정희 임업연구사의 얘기는 다르다. 그는 “잡초가 인간의 관점에선 무의미한 식물이지만 생태계 차원에선 굉장히 중요한 식물”이라고 말했다. 이인용 국립농업과학원 잡초연구실장도 “잡초를 식물자원으로 보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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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그냥 잡초라고 부르지만 모두 어엿한 이름들이 있다. 본초학(本草學)에 따라 한자에서 유래한 것도 있지만 대개는 농가에서 부르던 이름들이 구전돼 굳혀진 것이다. 크기, 형태적 특징, 서식지가 반영되거나 설화·전설, 동물, 사람과 연관된 이름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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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별꽃·좀개구리밥·왕고들빼기·긴이삭비름 등은 크기가 반영된 경우다. 가시박·여뀌바늘·털진득찰은 잡초 모양에서 따온 이름이다. 며느리밑씻개·며느리밥풀·며느리배꼽 등은 모두 가시를 가졌거나 모양이 가시를 닮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시집살이 탓에 고달픈 며느리의 삶이 투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선희 고려대 환경생태연구소 연구교수는 “잡초란 식물은 없다. 잡초의 개념은 상대적이어서 밀을 키우는 밭에 보리가 나온다면 보리가 잡초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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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인류가 대대로 의존했던 시원(始原)의 먹거리다. 과거 전쟁이나 기근이 심할 땐 식량을 대신하는 구황 작물 역할을 했다. ‘사흘에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듯하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오늘날 잡초로 전락한 ‘피’도 원래는 작물이었다.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피’는 영양 면에서 쌀·보리에 뒤지지 않는다. 또 섬유질은 백미에 비해 2∼4배가 많다. 하지만 맛이 쌀이나 보리에 뒤떨어져 잡초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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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

최근 들어 일부 잡초는 건강식품 혹은 별미 식재료가 되고 있다. 고들빼기는 김치로, 취나물은 장아찌로 먹는다. 변비에도 효과가 있는 민들레는 차로 마시고, 토끼풀은 샐러드 재료로 젊은층 사이에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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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바구니 끼고 들로 마당으로 잡초 레시피』(권포근·고진하 지음, 웜홀 펴냄)는 냉이수제비·토끼풀꽃튀김·잡초샌드위치 등 86가지 잡초레시피를 소개한다. 저자 부부는 강원도 원주의 시골 마을에 살며 인근 잡초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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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약재로서의 효능도 주목받고 있다. 병풀은 흉터 치료 연고의 주원료로 활용된다. 동인도제도·아메리카 등에서 약 3000년 전부터 각종 상처나 종기, 흉터 치유에 사용됐다고 한다. 개똥쑥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쇠비름은 오메가3의 원료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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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쑥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잡초도 있다. 보스턴 고사리는 발암성 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정화하고, 담배연기를 제거하는 데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주로 공중걸이 화분에 심고 기르는데 다른 고사리류에 비해 기르기도 쉽고, 공기정화식물인 관엽식물보다 공간도 작게 차지한다.

잡초는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강력한 방향물질을 분비한다. 이 때문에 병해충의 접근도 차단한다. 사상자가 대표적이다. 허브의 일종인 구몬초·라벤더 등은 가정에서 모기와 같은 벌레를 쫓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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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

잡초는 친환경 ‘에너지작물’이기도 하다. 저수지나 습지 등에 흔히 자생하는 ‘부들’에선 석유 대체 에너지인 바이오 에탄올을 추출할 수 있다. 부들의 줄기와 잎, 뿌리에서 연료를 뽑아내는 수율(收率)은 40∼45%로, 대표적인 바이오에너지인 옥수수(30%)나 사탕수수(10.8%)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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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국토를 아름답게 수놓는 야생화도 된다. 좀씀바귀·선씀바귀·가락지나물·미나리아재비 등은 5~6월에 꽃을 피운다. 이같은 잡초를 활용해 인테리어 소재나 책갈피·부채 등으로 재탄생시킬 수도 있다. 생화나 나뭇잎을 눌러서 말리는 압화(壓花) 기법을 통해서다. 꼭두서니(붉은색), 지치(자주색), 칡(초록색), 민들레(노란색) 등은 식물성 친환경 염료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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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는 ‘지구 지킴이’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잡초는 우선 낙수나 흐르는 물로부터 지표면을 보호해 토양 침식과 유실을 막는다. 우산잔디·고마리·좀씀바귀 등이 주로 활용된다. 이 때문에 산지·논둑·경사밭·하수처리장 등에 잡초를 일부러 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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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레옥잠과 미나리는 수질을 정화하는데 효과가 있다. 부레옥잠은 질소와 인산 제거에 효과가 있고 미나리는 중금속 정화 기능이 우수하다. 폐수 정화에 이용된 부레옥잠을 퇴비로 만들면 토양에 유기물을 공급하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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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천적’이라고 알려진 잡초지만, 되레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잡초 덕에 토양미생물이 살기 좋은 땅으로 개선돼 결과적으로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어서다. 제초제를 대신하는 ‘잡초를 잡는 잡초’들도 있다. 들묵새·긴병꽃풀 등이다. 이들은 작물 생장에 방해가 되는 잡초들이 자라지 못하게 기능한다. 특히 들묵새는 여름이 되면 자연스럽게 말라죽어 따로 풀을 베지 않아도 된다.

잡초도 출신에 따라 국내종과 외래종으로 구분한다. 주로 구한말 개항(1876) 이후 유입된 잡초를 외래 잡초로 구분한다. 최근 들어 외래 잡초의 증가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 생육 면적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외래 잡초 대부분은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천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토종 잡초 혹은 일반 작물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 생태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

외래종 증가의 원인은 농산물의 수입 증가와 최근 심화되는 이상 고온 등 기후변화로 추정된다. 특히 외래 잡초는 교란(攪亂)된 지역에 잘 정착하는 특성이 있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휩쓸고 간 자리에 폭발적으로 확산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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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종 가시박.

북미가 원산지인 덩굴성 외래 잡초 ‘가시박’은 잡초계의 황소개구리다. 1980년대 이전에 국내에 유입됐다가 왕성한 번식력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주로 습지나 강과 인접한 지역에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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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종 어저귀.

필요에 따라 국내에 들여와 재배하다가 잡초로 전락한 외래종도 있다. 인도가 원산지인 ‘어저귀’는 처음에 섬유작물로 도입됐으나 더 이상 쓰지 않으면서 잡초가 됐다. 사료용 옥수수 밭의 대표적인 악성잡초로 소의 사료에 많이 섞이면 우유에서 악취가 날 수 있다. 반면 중국에서 알콜 제조용으로 들여왔던 돼지감자는 한때 잡초로 취급받았으나 최근 들어 바이오 에너지 소재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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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수영

전문가들은 잡초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공존한다고 말한다. 도깨비가지는 잎과 줄기에 억센 가시가 있어 목초지에 나올 경우 소의 섭식을 방해한다. 유독물질이 있는 애기수영은 소의 건강을 헤치고, 우유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한국도로공사에선 고속도로 주변 잡초 제거 비용만 연간 400억원 가량을 쓴다. 이 때문에 이인용 실장은 “잡초의 위해성과 기능성을 모두 고려하는 연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 참고 : 『두 얼굴의 잡초』(농촌진흥청), 『잡초 및 제초제 특강』(한국잡초학회)
※도움말 : 이인용 잡초연구실장, 홍선희 연구교수
※사진 : 농촌진흥청·한국생약자원생태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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