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없는 성장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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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정책의 기조가 확대성장으로 기우는것 같다. 이 문제는 경제계뿐 아니라 여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또는 행정부안에서 조차 제기되고있어 국민들의 관심을 모은다.
경제정책의 줄거리를 어떻게 잡아갈것인가의 문제는 과거의 경험으로 볼때 경제보다는 정치·사회적 변화에 더 지배되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정책의 양극화 내지는 시계추 현상으로 나타났다.
일을 벌이는 논리는 대부분 경제밖에서 제시되었고 그 뒷수습은 경제쪽에서 맡아해온것이 지금까지의 반복된 도식이다. 경제상황은 언제나 가변 유동적이므로 정책의 골격이 경직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같은 이유로 정책은 언제나 신축과 탄력을 가져야한다.
그러나 경제를 정치만으로 재단했을때는 언제나 크나큰 부작용을 수반했고 우리의 경우는 그 부작용이 인플레와 국제수지악화로 이어졌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그런데 지금은 일을 벌이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가장 큰 배경은 상반기 3.2%성장의 쇼크와 수출부진이다.
그러나 상반기 저성장과 수출부진의 실체를 엄밀히 따진다면 확대정책만이 그 해답이라는 결론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저성장의 바탕은 수출수요의 침체와 투자부진인데 전자는 해외시장의 전반적인 침체와 연관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국내수출산업의 구조적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후자는 내외수요의 부진외에도 경제외적인 투자환경의 부조와 연결된 측면을 무시할수 없다.
때문에 수출부진은 대외경쟁력을 보강하는 국내적대응과 산업설비의 개체등 전통적인 경쟁화수단에 의존할수 밖에 없으며 그 이상의 노력은 비용효과면에서 불리할 뿐만 아니라 실효도 없다.
그리고 이런 대내적대응은 지금까지의 환율인상과 수출관련 금융완화, 그리고 수출산업설비금용의 대폭적 지원등으로 이미 구체화되어 왔다. 굳이 더 보강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금리인하를 포함하여 자금코스트를 줄이는것도 유용한 대응책이 될 수 있다.
문제는 해외시장여건이 이같은 대내적대응의 효과에 근본적인 제약이 되고있는 점이다. 이점을 외면한채 무리한 수출드라이브를 강행한다면 효과도 없고 부작용만 커진다.
후자의 투자부진은 안팎의 불투명한 투자환경과 연관되었으나 3·4분기이후 점차 개선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자금면에서도 완화된 셈이다.
정작 우려해야함 문제는 안정화 기조자체가 아니라 국내경제의 지나친 해외의존과 불경기의 대응능력이 약하다는 점이다. 3·2%의 성장과 전년수준의 수출이 다른 경쟁국과의 실적 비교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데도 국내적 충격과 실업증가가 유난히 두드러지는 것은 이같은 산업구조적 취약성을 반영하다.
정부가 경제의 구조적 개편을 서두르고 있는것도 이런 취약점을 개선하려는 뜻이고 그것을 이루자면 인플레나 확대정책으로는 불가능하다. 안정화 시책의 본뜻은 이런 인플레체질의 개선과 산업구조의 강화에 있지 결코 안정자체에 있지는 않다.
따라서 부실기업의 정리를 포함한 산업체질의 개편이 끝날때까지는 안정화의 기조가 불가피하다. 다만 당면한 실업 증가는 안정기조와 국제수지의 벽을 밀지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인 내수진작과 투자활성화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때문에 정도를 넘는 확대정책으로의 재선회는 엄중히 경계되어야할 싯점이다.
그것은 인플레를 무릅쓴 경제성장이란 무의미하다는 뜻도 된다. 우리가 지난 몇년동안 한자리숫자의 물가인상율을 잡기위해 얼마나 고심참담해왔는가. 그 인플레에 다시 빠져 든다면 그로부터의 탈출은 더 많은 노력과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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