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 [에세이] 나의 게임중독 탈출기

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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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송치원. 대구에 사는 고3 남자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를 넘나든다. 피시방에서 라면을 먹으며 칼로리를 따질 정도로 분석적이며 가끔은 냉정하기도 하다. 취미는 게임, 농구, 사진, 인터넷 뒤지기, 쓸 데 없는 걸로 친구랑 논쟁하기. 특기는 입 벌리기, 농구, 사진찍기 등.

하지만 무엇보다 내 인생을 잘 설명하는 두 글자는 바로 ‘게임’이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라이프가 시작됐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건 윈도우 98 시절, 집 컴퓨터로 했던 '알라딘'과 '스타크래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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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에서 개발한 게임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것이 게임이다. 게임에 투자하는 시간은 나날이 늘어만 갔다. 게임시간을 줄이기 위해 엄마가 컴퓨터에 설치한 시간 제한 프로그램을 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무효화했다.

방학이면 나의 게임라이프는 절정에 달했다.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게임라이프를 시작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학원에 가기 전 하루 온종일 컴퓨터의 불빛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식사와 최대 고비였던 학원 숙제 조차도 게임을 하며 해결했다.

중학교 게임라이프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부모님의 등쌀에 시험기간만 되면 도서관으로 등떠밀려 갔던 점이다. 도서관은 PC방을 가기 위한 필요조건 같은 것이었다. 내신 성적은 반에서 7~8등은 됐다.

자녀보호 프로그램 중 하나인 ‘맘아이’. 보호자가 자녀의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이를 풀기 위해 어려 방법을 강구하였으나 뚫리지 않아 학생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사진=맘아이]

자녀보호 프로그램 중 하나인 ‘맘아이’. 보호자가 자녀의 컴퓨터 사용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이를 풀기 위해 어려 방법을 강구하였으나 뚫리지 않아 학생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사진=맘아이]

그런 내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자사고 입시 때문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이하 ‘자사고’)에 진학하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형이 자사고에 다니니까.’ 세 살 터울의 형이 다니던 자사고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22%의 내 석차로는 자사고에 지원하기에 부족하다는 사실을 중3 때에야 알게 됐다. 물론 3학년 땐 자사고에 가야 하는 이유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좀 더 공부했다. 아니, 조금 덜 놀았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원래 가고 싶었던 K자사고가 아닌 D자사고에 원서를 넣었는데 역대 최고의 경쟁률이 나왔고, 나는 보란 듯이 떨어져버렸다. 그 후 K자사고의 추가모집에 원서를 냈고, 낮은 커트라인 덕분에 운 좋게 합격했다

합격 이후 오히려 위기감이 몰려왔다. 나보다 좋은 성적으로 진학했던 형의 반 석차가 뒤에서 2등을 기록했던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웠다. 중학교 3학년 기말고사가 끝난 후부터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가 가장 놀기 좋을 때인데, 나는 그 모든 시간을 공부에 투자했다. 마지막 겨울방학 땐 아침 6시에 일어나 ‘예비 학교’라고 불리는 선행학습 프로그램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낮 12시에 마치면 부족한 기초 실력을 닦기 위해 학원으로 가 오후 1시에서 5시까지 수업을 들은 뒤, 8시까지 자습을 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8시부터 10시까지 복싱을 배웠다. 그리곤 집에 와서 12시까지 공부를 한 뒤 잤다.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 목표로 세운 성균관대 글로벌 경제학과를 생각하며 버텼다. 게임도 이 악물고 끊었고, 정말 좋아하는 농구도 삼갔다. 다행히 이런 노력은 고교 진학 후 3월 모의고사 반 1등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학원 때문만은 아니었다. 2학년이 되었을 때 수학 학원을 그만두자 오히려 60점대였던 점수가 80점대로 한번에 올랐다.  3학년인 지금, 나는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떤 학원도 다니지 않으면서 반 1등을 유지하고 있다.

“새는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한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세상을 파괴해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난 이 글을 처음 마주했을 때, 게임에 미쳐 있었던 내가 생각났다. 나의 세상이란 게임 속 세상이었다. 현실보다 게임 속 친구들과 더 친했으며, 말도 게임 속에서 더 많이 했다. 하지만 다행히 부모님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과 학벌, 그리고 꿈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주었다. 공부를 시작하며 내 세상은 파괴되었고, 또 다른 세상을 맞이한 또 다른 나로 태어났다.

게임으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각박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더욱 만끽하기 위해서 자신을 가둬놓은 게임 속 세상은 파괴되어야 한다고. 벗어날 수 있다고.

글=송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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