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시가 많이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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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견시인과 힘있는 젊은시인들에 의한 서사시작업이 우리시단에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최근에 나온것으로는 이근배씨의『한강』, 정동주씨의 『논개』, 배달정씨의 『성 김대건』, 김종해씨의 『천노, 일어서다』, 장효문씨의 『전봉준』 등이 있다.
우리 서사시의 전통은 김동환씨의 『국경의 밤』, 김용호씨의 『남해독가』, 신동봉씨의 『금강』, 신경림씨의『새재』등으로 이어졌다.
서사시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시로 나타내는것으로 인물을 통한 사건의 전개가 있는 것이다.
장시와 연작시들도 길이가 길어질수 있으나 사건의 전개가 없는것이 서사시와 다르다.
서사시는 시가 갖는 호소력과 상징성으로 소설과 다른 감동을 준다.
이근배씨의 『한강』은 해방이후 5·16까지의 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시로써 이 시대를 조명한 것은 처음이다.
『한강』는 김정운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파란많았던 이 시대를 그리고있다. 김구에 대한 새로운 접근, 통일을 전제로한 시인의 시대를 보는 눈이 드러났다. 시의 가운데 가운데에 「어머니」 라는 서정시를 삽입시킴으로써 시로서의 형상화에 노력했다. 7천행의 대작으로 이씨는 앞으로 5·16이후의 속편을 쓸 계획.
정동주씨의 『논개』는 7천행분량으로 논개의 어린시절·사랑이야기·순절등을 그리고 있다. 논개의 순절을 그린 부문에서 시인의 젊은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논개가 기생으로 알려져있는 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강조한 부문은 지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종해씨의 『천노, 일어서다』는 고려때 최초로 노비의 난을 일으킨 「만적」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김씨는 이 서사시를 살아서 죽은 생활을 하느것보다 죽어서 좀더 자유로와지기 위한 자기포기의 삶에서 우려나는 용기와 힘의 결합으로 승화시키고있다.
장효문씨의 『전봉준』은 1만8천행에 달하는 대서사시. 동학혁명의 과정을 철저한 현지취재에 의해 써냈다. 이근배씨는 『오늘날 우리 삶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삶의 폭이 넓어진데 비해 지금의 시는 매우 짧아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라며 시인들이 보다 볼륨있는 작업에 관심을 갖게될 것이라고 보았다.
서사시는 또 앞으로 오페라등이 활발해지면서 음악·춤등과 만날때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서 소설·희곡보다 더 적합한 장르가 될수있다. 오페라등에는 시적 표현력과 구성이 아니면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이 리얼리티로서 전달되는 것이라면 시는 감성에 의해 울림을 준다.
서사시는 우리 역사상의 인물이나 사건을 울림으로 전달할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임재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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