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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전 오늘을 기억 하시나요…사진으로 본 6월 항쟁의 기억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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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전 오늘 사람들은 거리로 나왔습니다. 도로 위의 차들은 일제히 경적을 울려댔고 사람들은 흰 손수건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1987년 1월 서울대 박종철 학생이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고문을 받다 사망한 사건이 뒤늦게 밝혀지자 사람들은 공분합니다.

이런 가운데 전두환 정권이 기존의 간접 선거 헌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면서 민주화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은 한층 더 깊어졌습니다. 5월 이런 열망들이 모아져 '민주헌법 쟁취를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됐고 전국 곳곳에서는 개헌 시위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해 6월,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6월 민주항쟁이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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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맞은 당시 이한열 모습 [중앙포토]

6월 항쟁 하루 전 연세대 학생들은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를 엽니다. 이 안에는 경영학과 학생 이한열도 있었습니다. 22살 생일을 한 달 여 앞두고 있던 이 학생은 이날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쓰러집니다. 그는 약 한 달 간 혼수상태로 병원에 있다 7월9일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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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가 당시 입고있던 옷 [사진 이한열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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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가 몸에 감싸고 있던 화공과 깃발 [사진 이한열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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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영정사진 [사진 이한열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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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판화 [사진 이한열기념사업회]

이한열기념사업회가 보관 중인 이한열 열사의 유품들입니다. 당시 입은 옷과 운동화, 몸에 감싸고 있던 깃발 등이 있습니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지난 9일 그가 최루탄을 맞은 연세대 정문 왼쪽 기둥 앞에 마름모 모양의 동판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이날부터 9월30일까지는 서울 이한열기념관에서 '2016이한열유물전'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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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다큐멘터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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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다큐멘터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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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다큐멘터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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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중앙포토]

이 일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됩니다. 김영삼·김대중·박형규·김승훈 등이 주도한 국민운동본부는 박종철고문살인규탄 및 호헌철폐국민대회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했습니다. 18개 도시에서 일제히 일어난 시위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같은 날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위원이 집권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국민들의 저항은 더욱 더 확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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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부산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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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부산 [중앙포토]

전국적으로 격렬한 시위가 계속됐고 결국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는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6.29선언을 발표하게 합니다. 주요 내용은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대통령 선거법 개정 ▶시국사범 석방 ▶언론의 자율성 보장 ▶정당활동 보장 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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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선언 [중앙포토]

그러니까 29년 전 오늘은 한국에 절차적 민주주의 수립의 바탕이 된 날입니다. 오늘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도심 곳곳에서 민주항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각각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그때보다 얼마나 더 나은 사회에서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요즘입니다. 29년 전 오늘이 2016년 오늘 우리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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