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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외교지혜|송기중<정문연교수·국어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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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려말에 설치되어 조선조 5백여년간 계속 유지되었던 사역원은 역관(외교통역관)을 양성, 확보하는 임무를 수행한 국가기관이었다. 이 기관에서는 네가지 인접 외국어, 즉 중국어·몽고어·일본어·여진어(만주어)를 습득시켰고, 교습용 교재들을 다수 출판하였다.
조선조 조정의 고위 양반관료들은 외교와 국방의 차원에서 사역원의 임무를 상당히 중요시하였다. 사역원에 소속된 생도들이 학습에 열중하지 않거나 역관들의 통역능력이 부족한 사실이 발견될때마다 그것을 질책하고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상소문이 왕에게 제출되었다.
사역원에서는 당장 필요해서뿐만 아니라 후일에 대비해서도 역관을 양성, 확보하고 있었다.
매년 2∼4차 중국조정에 파견시켰던 사신단의 통역업무와 서울에 파견되어 오는 중국 사신들을 응대하기 위하여 중국어역관은 항시 필요하였다.
북방 변경지방에서는 여진인들과 잦은 접촉이 있었고, 남쪽해안지방에는 왜인들이 자주 왕래하였으므로 여진어와 일본어 역관들도 수시로 필요하였다.
그러나 조선조 5백여년간 몽고인들과는 접촉이 거의 전무했는데도 불구하고 몽고어 통역관은 항상 훈련시켜 확보하고 있었다.
또 몽고어 교재내용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을 때는 북경에 파견되는 사신단에 몽역관을 수행시켜 그곳에서 몽고인과 접촉하여 수정토록 하였다. 후일에 있을지도 모를 몽고족의 침임에 대비하여 몽역관의 양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조정의 논의는 18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현상이 몇가지 발견된다. 그중 하나는 삼국시대이후 이민족의 무력침략을 받고도 왕조가 멸망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침략군에 상당기간 저항했던 당시 군주마저 바뀐 일이 없는 사실이다.
고려시대의 계단침입과 몽고침입, 조선시대의 만주침입이 모두 비슷한 형태로 종결되었다. 그러한 독특한 역사 사실의 이면에는 우리 선조들의 탁월한 외교기술이 있었고 외교를 중시하였던 사실은 역관의 양성제도에서도 볼 수있을 듯하다.
20세기 이전에 조선조의 사역원과 같이 외교·국방의 한가지 수단으로 통역관리를 양성하는 기관을 설치했던 나라들이 별로 없었다.
◇『파한잡기』 필자가 바뀝니다.
이대원 (서양화가·전홍익대총장) 김신일 (서울대교수·교육학) 한림화 (소설가) 송기중(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국어학)씨가 12월까지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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