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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토론] 병영內 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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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병영 내 폭력사례가 속속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부하 사병을 성추행한 혐의로 대대장이 구속되고, 선임병에게 성추행 당한 병사가 자살한 일도 벌어졌다. 군.경 관계자와 피해자 가족.사회단체 관계자가 모여 병영 내 폭력의 원인과 실태, 근절 대책을 모색하는 토론을 했다.

▶李하경 위원=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 군대에 간 젊은이들이 병영 내 구타사고 등으로 희생되는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습니다.

▶오창래 실장=천주교인권위가 군 사망사고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1998년 김훈 중위 사망사고 이후부터입니다. 그동안 사망 원인에 의혹이 가는 사례가 1백여건 접수됐고, 이 가운데 50여건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올해는 군내 사망사고가 아홉건 신고됐고, 의경 사망사건도 한건 접수됐습니다.

▶곽윤열 위원장=제 아들은 2001년 용산경찰서에서 의경으로 근무하던 중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처음에는 구타가 없었다고 결론냈습니다. 하지만 경찰청에서 재조사한 기록을 보니 전입하는 날부터 고참들에게 "이 자식, 눈동자가 흐릿한 게 군기가 엉망"이라며 사망하는 날까지 9일간이나 구타당했습니다. 고참 5명이 신병 8명을 구타했는데 두 아이는 이가 부러졌고, 한 아이는 정신질환이 생겨 경찰병원에 입원했다가 치료되지 않아 전역했다고 합니다.

▶박태숙씨=우리 아이는 99년 8월 천안경찰서에서 의경으로 근무하다 숨졌어요. 가해자인 고참이 특수절도 전과자란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생활하다 군에 들어오고나니 왕인 것처럼 행세한 겁니다. 심지어 우리 아이 아버지가 경찰관이라는 점까지 트집잡아 때리고 잠을 안재워 원형탈모증이 생겼더군요. 외박을 나왔는데 너무 불안해 하는 게 예전의 우리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한홍구 소장=걸프전 때 사망한 미군의 숫자가 안전사고를 포함해 2백50명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시도 아닌데 1년에 6백명이 죽습니다. 안전사고까지 포함한 숫자이긴 하지만 3~4년에 1개 연대가 없어지는 규모죠. 이런 현실을 국민은 모르고 있고, 군은 아직 성역으로 남아 있습니다.지난해 군내 자살사고는 44건, 2001년에는 66건입니다. 사병들을 인터뷰해보면 자살충동을 경험한 경우가 70%에 이르고 탈영하고 싶은 느낌을 가졌던 사례도 80%에 이릅니다.

▶김흥수 과장=육군의 경우 구타 및 가혹행위 관련 사고는 98년 한 해 동안 7백여건이 발생했는데 지난해에는 4백여건으로 43%가 감소했습니다. 또 지난 5년간 구타.가혹행위자 4천7백명을 적발해 3천4백명을 구속했습니다. 직접적인 구타로 사망한 숫자는 80년대 연평균 20명 이상이었는데 현재는 연간 1~2명으로 줄어든 상태입니다.

▶韓소장=군 당국이 많이 노력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절대치를 놓고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사망자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특히 자살 사례가 높게 나와 타살을 은폐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빨리 해결해야 국민의 군대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박상갑 중령=병영 내 사고로 국민께 심려를 끼친 것은 송구스럽지만 군 전체를 살인집단처럼 몰아가는 건 유감입니다. 걸프전은 지구상 최초의 직접적 충돌이 없는 디지털 전쟁입니다. 미군은 자살을 사고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미군의 단순사고 사망자는 2001년 1백86명이고, 일본도 연간 1백50명 수준입니다. 우리는 지난해 자살을 포함해 1백20명이 죽었습니다. 사망사고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군의 노력에 대한 평가도 있었으면 합니다.

▶李위원=최근 들어 병영 내 성폭력 문제도 심각한 수준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吳실장=국가인권위원회와 천주교인권위가 공동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 병사의 10% 가량이 군내에서 성추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지만 뚜렷하게 신고 사례가 접수되거나 한 경우는 없습니다. 이는 동성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장난으로 넘기려는 군내 분위기나 엄격한 계급체계 아래서 자칫 문제를 바깥으로 알렸을 경우 불이익을 우려한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군내 성폭력은 인격과 영혼에 대한 학대행위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뿌리뽑아야 합니다.

▶朴중령=최근 육군에서 드러난 대대장의 성추행 사건은 군 자체적으로 집중적인 조사를 벌여 나온 겁니다. 육군 헌병대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성군기 위반사고가 20여건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심각하게 처벌된 경우는 미미합니다.

▶李위원=왜 영내 폭력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겁니까.

▶吳실장=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군사문화도 문제라고 봅니다. 일제 때의 폭압과 해방 이후 미군정.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내려온 겁니다. 군에 간 아들이 설혹 구타당해도 아버지는 "남자가 군대에 가면 몇 대 얻어맞을 수도 있는 것이지"하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다 지휘관들은 군인정신과 엄정한 군기확립을 강조하니 젊은 병사들이 기댈 곳이 없어집니다.

▶金과장=군내 구타 문제를 군사문화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구타라는 게 갑작스레 군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사회생활의 연장 선상에서 이뤄지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가정교육과 학교.사회교육이 호흡을 맞춰 폭력문화의 추방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韓소장=병사들의 열악한 처우도 폭력적인 성향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월급으로 2만원을 받는 병사들은 2만원짜리 인격으로 대우받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고 국가가 주장하려면 이를 담당하고 있는 사병들의 인권을 전반적으로 제고해야 합니다. 16조~17조원에 이르는 국방예산 중 사병월급은 1천2백80억원으로 0.8%에 불과합니다.

▶郭위원장=군 사고의 경우 자꾸 숨기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수사를 맡은 헌병대나 사단장 등 지휘관이 자신의 승진 문제 등을 우려해 은폐.왜곡하려는 겁니다.

▶金과장=그 말씀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구타.가혹행위를 지휘관이 예방하고 사전에 적발해 조치하면 부대평가시 가산점을 주는 제도도 운영 중입니다. 혹 상급 지휘관은 속일 수 있어도 부하는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사건 당시에는 말을 맞췄다 해도 병사가 제대하면 다 드러나게 됩니다.

▶설광섭 계장=경찰도 지휘관들이 자신에게 떨어질 책임 문제 때문에 은폐하려는 행위를 방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자진해서 부대 내 구타사고 등을 발견한 경우 면책해주고 있습니다.

▶李위원=병영문화가 하루하루 소모적인 시간 보내기로 이어지는 것도 병영 내 폭력의 한 원인이 아닙니까. 장병들이 건전한 여가를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朴중령=여가시간을 활용해 컴퓨터 교육 등을 시키려는 구상은 있지만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교관이나 교육장소 등에 문제가 있고, 예산 부족도 걸림돌입니다.

▶韓소장=복무생활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외출.외박이나 휴가를 좀더 늘려주고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李위원=이제 근본적인 대응책 마련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韓소장=대만에 가서 보고 놀란 사실은 군 복무 중 의문사한 가족들의 모임인 군가협 회장이 국방장관의 자문위원이란 점입니다. 각 부대 내무반마다 군가협 소속 어머니들의 상담 전화번호가 걸려 있습니다. 지휘관들에게 군내 폭력 문제 등을 털어놓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감안해 이들을 감싸줄 수 있는 군가협 어머니들과 상담하라는 취지죠. 입대시 사병들의 권리를 담은 사병인권수첩을 나눠주는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郭위원장=철저한 면담을 통해 신병이나 문제사병의 동태를 잘 살펴 대응해야 합니다. 자꾸 괴롭히거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다른 근무지로 보내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朴씨=전.의경의 경우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도 절실합니다. 사고가 난 뒤 아들이 생활하던 숙소에 가보니 창문도 없는 방 한칸에서 고참 네명과 생활했더군요. 이들과 경찰직원 등 여섯명의 밥을 우리 아들이 하루 6천원의 부식비로 챙겨줘야 했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반찬을 제대로 못한다느니 부식비를 떼어먹었다느니 하며 상습적으로 괴롭히는 일이 벌어진 거죠.

▶吳실장=이제 발상을 바꿔 군 문제를 사회 전체가 풀어가야 합니다. 유가족도 포함시키고 지휘관들도 열린 자세로 군문에 보낸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의 한을 풀어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아울러 군 당국은 과학적인 수사 방식을 도입하고, 군사 보안을 이유로 유가족의 접근까지 제한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합니다.

▶金과장=군에 아들을 믿고 맡겨주신 부모님들을 정말 안심시켜 드릴 수 있게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이영종 기자

<참석자>

▶김흥수 육군본부 司制 근무과장

▶박상갑 육군본부 안전계획장교

▶설광섭 경찰청 전경관리계장

▶한홍구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 소장

▶오창래 천주교인권委 상담조사실장

▶곽윤열 군의문사가족協 조사위원장

▶박태숙 고(故) 노선철 일경 어머니

사회=이하경 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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