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입내신」결점 빨리 고쳐야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지난5월11일 아침8시10분쯤. 서울M고교에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바로 전날 1학기중간고사를 끝낸 2학년X반 H군(16)이 숨진채로 본관 건물앞에서 발견된것이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H군의 부모는 아들의 시체앞에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출근길의 선생님들이나 H군을 알아본 등교길의 동료들은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었었다. 자살로 보여지는 시체의 장본인이 다름아닌 학급1등에 전교6위이내의 이학교 최우등생이자 모범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경찰조사결과 H군의 사인은 건물 위층에서의 추락에 의한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현장주변을 조사한 끝에 H군이 시체로 발견되기 5∼6시간전인 이날 새벽2∼3시에 건물6층에 있는 자기반 커튼을 묶어 밑으로 타고내려오다 추락했다고 최종추정했다.
2학년X반 교실 바로밑에는 교무실이 있었고 커튼으로 만든 밧줄은 교무실에 닿아있었다. 부모에 따르면, 새벽1시까지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H군이 왜 그런 시간에 학교에서 밧줄을 타고 위험을 무릅쓰며 교무실에 침입하려 했을까.
추리만 가능할 뿐 확실한 이유는 아무도 알수없다. 다만 학교측은 H군 주위동료들의 증언과 과목담당교사의 이야기를 종합, H군이 그 전날 영어시험을 잘못 치러 답안지를 고치려고 교무실에 들어가려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뿐이다.
1위만을 해온 최우등생이라도 중간고사에서 한 과목을 망치면 대입에서 휘청거리게 되는것이 요즘의 고교성적이다.
내신성적은 15등급으로 나눠져 있고 몇번썩 치르는 시험결과에 따라 졸업때 그 등급이 결정되며 한 과목을 남보다 잘못치르면 등급이 떨어지게된다. 그것은 곧 대학입시에서 합격여부와 직결된다.
우등생만이 아니다. 몇등급씩 쳐져 손해를 각오하고 있는 일반학생의 경우는 더하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여고생이나 심약한 고교생들이 자살소동을 가끔 빚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학입학 전형총점에 고교내신성적을 일정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반영토록 한것은 81학년도 이후부터. 그동안 반영비율이나 등급구분등에 조금씩의 변화는 있었지만 이 제도는 근본적인 변화없이 내년 입시로 6년째를 맞는다.
내년 대학입시에도 전형총점에 30%이상의 고교내신성적이 반영된다. 다만 내년부터는 내신등급산출에 1학년성적이 20%, 2학년성적은 30%, 3학년성적이 50%씩 반영되고 논술고사 추가로 같은 30%라도 각각 다른 내신점수에 관계없이 등급간 점수차는 2점으로 통일된 점이 종래와는 다른점이다.
내신등급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 이를 위해 학생은 대체로 한학기에 두번(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시험을 치른다. 그때마다 각각 90-80-70-60점이상과 59점이하로 수-우-미-양-가의 평점을 부여한다. 수-우-미-양-가는 다시 5-4-3-2-1의 가중치를 주고 학기당 이수단위(주당 수업시간수)에 이를 곱해 환산점수를 산출한다.
학기당 전과목의 교과별 환산점수를 합산, 6개학기 환산점수를 각각 산출한다. 내년대학입시부터는 1·2·3학년의 성적을 각각 20, 30-50%씩 차등반영토록 돼있어 1학년 환산총점을 2배, 2학년 총점은 3배, 3학년것은 5배로 해 3년간의 총점을 다시 산출한다. 이를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일렬로 세우고 점수순서로 전체의 상위3%는 1등급, 7%는 2등급, 12%는 3등급등으로 내신등급을 책정하게된다.
이렇게 한번 책정된 등급은 평생 씻을수 없는 낙인이 된다. 가정형편이나 불가피한 정신 또는 신체적 제약으로 시험공부를 잘못하게되면 몇년이 지나도 대학입시를 치를때는 그대로 따라다니게 된다. 전혀 공부를 할수없는 사정때문에 고교에서 한번 15등급을 받게된 사람은 몇년후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학력고사성적이 3백점이 되더라도 내년의 경우 28점이상의 감점을 강요당하게 된다. 발전가능성을 부인하는 셈이다.
산출과정에도 문제점이 없지않다. 획일적으로 90점은 가중치5점이 되는 「수」로 평가하고 89점은 4점짜리인 「우」가 되는, 그래서 이수단위가 6단위인 과목일때는 환산점수에서 6점의 차이가 나도록 돼있는 불합리가 있다. 이는 환산총점순으로 등급이 상대적으로 책정되는 과정과 함께 모든 고교생을 불만스러우면서도 동료끼리 만인은 자신의 적이 되는 살벌한 경쟁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일선 교사들은 안타까와한다.
그래서 고교주변에서는 「내신과외」라는 용어가 은밀히 번지고 있을 정도다. 지난5월 서울S고교에서 말썽이 됐던 일도 있지만 중간 또는 기말고사범위가 정해진뒤 교과담당교사가 잠깐동안 은밀하게 만나 행하는 과외를 말한다. 과목의 비중에 따라 교습비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서울의 모대입학원원장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내신성적은 「어머니성적」이라고 하지않습니까. 교과담당교사를 찾아다니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등급을 높이는 학부모가 많거든요. 주관식 채점이 불가피한 예·체능과목에서는 공공연한 일 아닙니까』라며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같은 일반의 의혹이 해소되지않는한 내신제도는 완벽한 설득력을 갖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선생님에게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느냐 또는 없느냐에 따라 평생을 따라다니며 진학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되는 내신이 영향을 받아서 되겠느냐는 것이다.
내신제도는 또 고사의 평가형태, 즉4지선다 일변도의 출제형태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내포돼있다는 지적도 받고있다. 성실·근면·사회 활동·지도성등 행동발달상황은 아예 제외된채 학력만을 평가하고 있는데다 학력도 창의력이나 표현력·종합력등 고등정신기능보다는 암기위주의 단순지식훈련만을 강요하고있다는 것이다.
대입학력고사가 그래서 그렇기도 하지만 학교나 교사는 불필요한 채점상의 오해를 받기싫은것이다. 아예 컴퓨터채점이 가능한 문제만을 출제하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에게 보다 큰 관심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지역차및 학교차를 현행제도가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야간고교와 주간고교, 실업고와 인문고, 대도시 고교와 농어촌의 소규모 고교간에는 같은 실력이라도 내신등급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주의 S고교에서는 학력고사에서 3백점을 받은 학생이 내신 4등급을 받은데 비해 서울의 야간D고교에서는 1등급이 학력고사에서 1백70점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렇더라도 고교내신제도의 장점은 여럿 들수있다.
『이 제도의 시행이후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도움을 주고있읍니다. 전에는 고교3년간의 개근생이 한반에 1명 있을까 말까였는데 요즈음은 50%이상이 3년 개근입니다. 결과적으로 탈선방지등의 효과가 컸다고 봐야지요. 물론 그것이 교육의 전부냐고 묻는다면 할말이 없지만….』
서울고 교도주임 한주호교사(54)는 내신제도 실시후 미술·음악·체육등 일부 과목을 등한시하던 풍조가 없어져 전인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의 정상화기틀이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사회적으로는 구태여 시험준비만 잘시키는 대도시 「일류고교」에 가지 않더라도 고향의 중·소고교에서 좋은 내신성적을 얻어 원하는 대학에 입학 할수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운영방법을 개선, 목숨을 걸 정도로 매달려서라도 시험성적을 1점이라도 더 따내야하는 가파른 경직성을 유연화하는일이다. 단순지식을 암기하는 능력이 아니라 잠재적인 발전가능성이 내신의 절대적인 평가기준이 돼야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