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 고택·귀품 국가기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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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남=이은윤·김국후기자】『오우가』『어부사시사』등의 고전 국문학작품으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가의 고택과 고전국문학작품·옛 그림·고전적·갖가지 전세유품등 귀중한 문화재 1만여점이 국가에 기증된다.
전남해남군 해남읍 연동의 고택을 지켜오고 있는 고산 14대 종손 윤형식씨(52)는 31일 상오『이들 문화재와 유적지는 한 가문의 영광이나 소유를 넘어선 민족적 문화유산으로 사회에 환원 시킬것을 결심, 이미 문공부당국에 기증의사를 전했고 구체적인 절차를 밟고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산수화·인물화등도>
전세품으로 5백여년동안 보존돼온 고산가의 문화재들은 일부가 보물·사적등의 국가지정을 받았고 나머지도 모두 중요문화재적 가치를 갖는 희귀한 유물들이다.
기증될 고산가 문화재들중의 보물 및 사적은『해남윤씨가 고화첩』『고산수적문서』『지정14년 노비문서』『고택』등이다.
한가문이 수백년동안 전세, 보존해온 이같은 질·량의 문화재들이 국가에 기증되는 예는 이번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기증유물의 내용은 지정문화재들과 사회·경제·천문학· 지리·수리·의학·음악·미술사·내방가사·음양·복서등의 고서적 및 고산의 자개책장· 벼루 등을 비롯한 갖가지 전세유품들이다.
송강 정철과 함께 한국 국문학사의 양대 비조인 고산(1587∼1671년)의 수적으로는『어부사시사』『산중신곡』과 유명한『오우가』등 단가 작품의 원본들이 손꼽히는 문화재다.
보물 48l호인『고화첩』2권에는 고산가 3대화가인 공재 윤두서, 낙서 윤덕희, 청고 윤용의『자화상』을 비롯한 산수·인물화 50여점이 들어 있다. 이밖에 몇해전에 발견된 공재의 『미인도』도 유명하다.

<고전첩이 8천여점>
양적으론 고전적이 8천여점으로 가장 많다. 옛책과 문서중에는 고려 공민왕때의『노비문서』(보물 483호)를 비롯, 중국 원말간행의『고씨 역사명인화보』등 희귀본의 책들이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고산 고택(대지 2천평)은 원래 해남윤씨의 본관을 득본한 어기강 윤효정(1475∼1543년)이 터를 잡은 곳이고 효종의 사부이기도 했던 고산이 수원에 하사받았던 녹우당을 1669년 옮겨지어 현재까지 잘 보존돼 있다.
고택은 본래 99간이었으나 현재는 55간만이 남아있다. 고산가의 문화재들은 동학혁명, 일제, 6·25전쟁등을 겪으면서도 용케 위기를 모면하고 역대 종손들에 의해 단 한점의 손실도 없이 온전히 보존돼 왔다.
동학혁명때는 동학군이 대지주들을 적대시하는 가운데서도 고산가만은「덕망가」라고 오히려 조총을 들고 지켜주었다. 일제때는「데라우찌·마사따께」(사내정헌)총독이 해남까지 직접 찾아와 몽고담요를 선물하면서 회유했고, 한 일본군 장성이 공재의『백마도』를 사가겠다고 졸랐지만 모두 거절했다.

<6·25전란에도 무사>
6·25전란중에는 종손 정현씨의 부인 광주 이씨가 홀로 남아 서첩과 전적등의 중요 유물을 명주 보자기에 싸서 대나무밭에 묻어 인민군의 중대본부가 됐던 고택의 문화재들을 전화에서 구했다.
윤형식씨가 국가기증을 결심하게된 또다른 배경은 개인 관리능력의 한계, 고산 유적지의 국민정신교육 도장화 갈망, 최근의 이화장 이승만박사 유품도난 충격등이다.
그는『3년전부터 국가 기증을 생각했으나 종중·가문의 합의를 끝낸것은 최근이었다』면서『이제 대대로 샅아온 고택을 떠나야할 아쉬움 같은 것도 없지는 않지만 고산 유적지가 문민 경세사상의 국민적 교육 도장이 돼주기를 바랄뿐』이라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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