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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스타트업 버블’이 두렵지 않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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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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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버블은 꺼지기 전까지는 버블이 아니다. 1900년대 초반의 미국 자동차 산업을 두고 과잉투자, 즉 버블이라고 걱정한 이는 없었다. 자동차 관련 기술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고, 독특한 기술을 내세운 자동차 제조사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으며, 그 기업들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도 줄을 서 있었다. 수백 개가 넘었던 자동차 제조사는 대공황을 전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빅 3’라 불리는 GM·포드·크라이슬러 3개사만 살아남았다.

시장경제 역사를 관통하는 ‘성장’의 이인삼각 파트너는 늘 버블이었다. 금융자산·부동산·지하자원·사회간접자본 등 주로 환금성 자산이 버블의 단골 메뉴였다. 때로는 자동차 버블처럼 혁신적인 기술이 원인이 된 버블도 종종 있었다. 자동차 버블 백 년 후인 2000년,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기술 버블’이 터졌다. 인터넷 기업을 상징하는 닷컴 (DotCom)이 만든 버블이었다. 1999년 초부터 2000년 1분기까지 미국에서만 534개의 기업이 기업 공개를 통해 상장을 했다. 어찌 버블이 붕괴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닷컴 버블은 처참하게 붕괴했지만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인터넷이 유선에서 무선으로 진화하며 창출해 낸 가치까지 톡톡하게 누리고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소수의 승자들에게 버블은 축복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버블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절대 다수의 패자들이 받은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부터 미국과 중국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버블 붕괴에 대한 우려가 이제 한국의 ‘스타트 업계’에서도 슬슬 흘러나오고 있다. 특정한 분야의 과잉투자에 대한 우려, 많은 사용자를 확보했지만 여전히 수익성이 불명확한 사업분야에 대한 걱정, 지나치게 높은 기업 가치에 대한 불안감 등 나름 타당하고 합리적인 분석을 내세운 우려의 목소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금의 상황이 버블이라 해도, 혹은 그것이 붕괴한다 해도 결코 두렵지 않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그런 우려의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닷컴 버블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국내 언론에선 그 누구도 과잉투자에 대해 냉철하게 비판적 보도를 한 적이 없었다. 버블이 붕괴하고 나서야 벤처는 게이트의 온상이 됐고, 벤처 관련 기사는 사회면에 주로 등장했다. 이후 10여 년간 국내 언론사엔 극소수를 제외하곤 벤처 혹은 스타트 업 전담 부서나 기자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4~5년간 스타트 업을 다루는 한국 언론은 달라졌다. 다양한 전문 미디어들도 등장했고, 주류 매체의 전담기자 숫자도 늘어났으며, 탁월한 취재력과 분석력도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스타트 업의 높아진 수준과 궤를 같이 하며 언론의 수준도 올라간 것이다. 그들의 통찰을 통해 나오는 버블 우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위기 상황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버블이 두렵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 주역들 때문이다. 닷컴 버블이 붕괴하자 대부분의 패자들은 떠났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거나,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니면 범죄자가 돼 사회와 격리되기도 했다. 일부 소수의 성공한 이들은 부동산 자산으로 갈아타며 업계를 떠난 이들도 있다. 진정한 기업가는 없었고 성공의 욕망으로 가득 찬 도박사들만 득실거렸다.

그때와 달리 현재 한국의 스타트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이들은 순도 높고 수준 높은 ‘기업가’들이 많다. 물론 그들이 성공과 부에 대한 열망이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들은 그런 성공이 상당히 집요하고 끈질긴 도전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그들은 한 번의 도전으로 인생을 결론지으려 달려들지도 않는다. 현재의 도전이 다소 울퉁불퉁하더라도 결코 조급해 하지 않기에 그들은 결국 ‘이기는 경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버블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마지막 이유는 ‘벤처 생태계’가 마침내 제대로 된 틀을 갖춰 가고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는 지속 가능한 생존의 힘을 스스로 가져야만 완성된다. 그런 면에서 아직도 정부 의존도가 높은 것은 걱정이다. 그럼에도 점점 단단해져 가는 한국의 벤처 생태계에 대해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 자기 완결적인 벤처 생태계는 앞으로 그 어떤 버블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고 새로운 혁신의 바탕이 될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더 이상 버블이 두렵지 않은 이유다.

문 규 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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