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중고거래…‘택배 영수증 함부로 보내지 마세요’

중앙일보

입력

“편의점에서 택배 접수하시고요. 영수증이랑 운송장 사진 보내주시면 입금할게요.”

2016년 3월 3일. 인터넷 카페 ‘중고△△’ 이용자 A씨가 올린 노트북에 대한 반응이 왔다. 물건을 구매하겠다는 사람은 이모(23)씨. 그런데 이씨는 자신이 돈을 입금하는 조건으로 택배 영수증과 운송장을 요구했다.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자신의 집 근처 한 편의점에서 오전 8시경 택배를 부치고 운송장 등을 촬영해 이씨의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일반적으로 중고거래에선 판매자가 ‘물건을 잘 보냈다’는 신뢰감을 주기 위해 구매자에게 운송장을 찍어보내곤 한다. 하지만 A씨의 노트북은 그렇게 사라졌고 돈 거래 없이 이씨의 손에 들어왔다.

어떻게 이씨는 노트북을 가져갈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씨가 '자신이 택배 의뢰자인 것처럼 행세'해 물건을 되돌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A씨가 택배를 부친 편의점으로 찾아가 “조금 전에 부친 택배를 취소하겠다”며 영수증 사진을 보여주고 편의점 직원으로부터 노트북을 받아 그대로 달아났다.

비슷한 수법으로 10일 동안 총 6차례에 걸쳐 시가 1510만원 상당의 물건을 훔쳤다. 서울 강남·송파·동작구와 경기도 군포·여주·양주시 등 범행 장소도 여러 곳이었고 훔친 물건도 노트북·순금팔찌·카메라 등으로 다양했다. 모든 범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중 5번을 실패로 돌아갔는데, 편의점 직원이 실제 택배영수증이 없다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경찰에 붙잡힌 이씨는 사기, 사기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이씨는 첫 범행 3일 전, 육군훈련소에 입영해야 했던 현역 입영 대상자라는 사실도 드러나 병역법위반 혐의도 추가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오윤경 판사는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80시간의 사회봉사를 할 것도 함께 주문했다.

오 판사는 “이씨에겐 동종 범행 전과가 있고, 범행 수법과 횟수 등에 비춰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하고 앞으로 성실하게 군 복무에 임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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