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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적 회담 실질 토의 못해|다음 회담 11월26일 서울 개최만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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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평양=합동취재단】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 이틀째 회의는 28일 상오 10시 평양 「인민문화궁전」회의실에서 비공개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27일 한적 대표단이 정치 선전 매스게임을 보다가 퇴장한 사건을 둘러싼 논란으로 실질문제 토론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상오 11시 56분 회의를 끝냈다.
다만 양측은 제10차 본 회담을 오는 11월 26일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관계기사·화보=3,10,11면>
회의 벽두 북적 이종률 단장이 『내가 먼저 공개로 말하겠다』고 말을 꺼낸 뒤 27일에 있었던 모란봉경기장에서의 한적 대표단 일행의 퇴장사건을 끄집어내 15분에 걸쳐 강경하고 격한 어조로 한적 측을 비난했다.
북적 이 단장은 상오 10시 2분전쯤 대표단을 이끌고 먼저 회의장에 나와 앉았다가 한적 대표단이 입장해 착석하자마자 비난 발언을 시작했다.
이 단장은 이날 미리 준비한 연설문을 통해 어제 모란봉 경기장에서 한적 대표단이 도중에 나간 것은 그곳에 참석한 10여만 평양 시민과 수만 명 어린 학생들의 성의에 대한 무례한 행동이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고 비난하면서 이것은 상대방의 일정에 따르기로 한 합의사항 위반이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이미 합의한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교환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영덕 한적 수석대표는 차분한 목소리로 『어제 있었던 사건은 매우 유감스럽고 슬픈 사건이었다』고 전제하고 『어제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쌍방 실무 대표간에 의사소통의 차질로 인해서 일어난 것으로 어느 한쪽이든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들려는 의도에 의해서 일어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수석대표는『북적 측은 당초 단순한 학생무용체조라고 말했고, 한적 측은 그에 따라 학생들이 모여서 체조를 하는 것으로 믿고 모란봉 경기장에 나갔으나 막상 경기장에 도착해보니 학생 외에도 10만 명에 가까운 일반인까지 나와 우리측으로서는 참기가 매우 어렵고 부담이 되는 의식을 진행시켰다』고 말했다.
이 수석대표는 『따라서 우리 대표단은 순간 놀라움과 당황함을 금할 수 없어 당장 일어나고 싶었으나 남북대화를 원활히 추진키 위해 1초라도 더 성의를 보이자는 태도로 참고 보았지만 끝내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 수석대표는 또『이것은 분단 40년간 첨예하게 대립해온 남북관계에서 빚어진 엄청난 의식과 지각의 차이에서 온 가슴아픈 현실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하고 『그러나 모든 성의와 인내로 이러한 사태를 넘기고 대화 추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적 이 단장은 이성을 잃은 듯한 격한 목소리로 8차 회담 때 우리측이 KBS방문 때 「만남의 광장」을 참관시킨 것까지 정치선전이라고 트집을 잡아 『이런 식이라면 고향방문단 교환이고 뭐고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떼를 썼다.
또 서성철 북적 부단장은『합의된 일정을 귀측이 어기고도 책임문제에 우리측까지 끌고 들어 갈 이유가 없다』고 다시 트집을 잡으면서『다만 예의에 어긋난 행동임을 명백히 해달라』고 강요했다.
박영수 북적 대변인은 『귀측이 어제 사태의 이유를 우리가 합의사항을 위반하고 체제문제를 개입시킨 데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일정문제는 사전에 충분히 조정된 것으로 언어도단』이라고 강변했다.
박 북적 대변인은 또 『10만 군중과 5만 어린이 앞에서 공공연히 퇴장한 행위는 납득할만한 해명을 듣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이어 우리측 송영대 대변인은 『귀측에서 어제 저녁 방송을 통해 아주 듣기 민망한 내용을 보도했다』며 『이는 불행한 일이며 가슴아픈 일이다. 참관내용을 사전에 한마디라도 귀띔 해 주었다면 이러한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따졌다.
송 대변인은 이어『우리도 지난 8차 회담부터 있었던 일에 대해 할말이 많지만 대화의 분위기를 살리고 이산가족의 염원을 성취시키기 위해 참고 말하지 않겠다』며 『누가 옳고 그르고 시비를 가리지 말고 회담을 계속하자』고 회담재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 북적 단장 등 북측대표들은 번갈아 가면서 『명백한 사과를 하라』고 계속 요구했다.
당초 이날의 제2차 회의에서는 27일 제1차 회의에서 우리측이 제안한 서울과 평양에 적십자 대표부를 설치하는 문제와 양측이 각기 제의한 자유왕래 등에 대한 합의서를 채택하는 문제 등에 관해 실질적인 토의를 벌일 예정이었다.
한적 측이 남북적대표부 설치와 아울러 의제 5개항별 구체적 실시 방안을 제시한 것과 달리 북적 측은 5개 의제를 「일괄 토의」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핵심적 방도」는 자유내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한적 측 제의와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또 한적 측이 3개 합의서안을 제시, 이번 회담에서 마무리 짓자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북적 측은▲이번 회담에서는 「일괄 토의」 와「자유내왕」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를 합의서로 채택하고▲합의를 실현시킬 절차를 내년 9월 이전까지 끝내자는 단계적인 처리를 내세워 논의의 여지를 드러냈다.
남북한적십자대표단은 이날 회의로 이틀간의 본 회담을 모두 마쳤으며 한적 대표단은 29일 상오 8시10분 평양을 출발,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귀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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