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한국인을 이렇게 동화시켰다|이숙자교수, 초등교과서 2백52종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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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실증분석적인 일제 비판서가 나왔다. 이숙자교수(경희대)는 최근 일제시대 초등교과서를 철저히 분석, 일제하의 초등교육을 실증적으로 비판했다. 이교수의 박사학위논문(일본 청산학원대)이기도 한 이 연구는 1895∼1979년까지의 초등교과서 2백52종을 분석, 7백30페이지의 방대한 책(『교과서에 묘사된 조선과 일본』일어판)으로 출판됐다.
이교수의 연구는 일제통치하의 한국교육이 동화교육이라는 지금까지의 막연한 강조를 탈피, 한국인 자녀들에게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쳤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지 않으면 그 비판은 설득력이 약해질 뿐만 아니라 단순한 비난에 그치고 말기 쉽다는 입장이다.
그는 교과서가 『아동의 심성 형성에 직접적인 작용을 한다』는 전제 하에 한국인 자녀들이 근대교육 여명기(1895년)부터 해방후의 1979년까지『무엇을 어떻게 배워왔는가』에 대해 심층분석 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한국」과「일본」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분석대상은 이 기간중의 「조선어독본」「일본어독본」「수신」등 초등교과들인데 과목마다 나오는 주제와 중심인물·삽화·어휘(명사) 등의 빈도수를 항목별로 집계, 분석했다. 특히 어휘에는 역사적 인물, 신화·설화속의 인물, 국가주의적·존왕애국적 어휘, 전쟁·군사적 어휘 등을 치밀하게 추출, 집계했다. 즉 시국의 추세가 교재의 내용과 출현어휘에 어떻게 민감하게 반영되고 있는가를 밝히고있다.
가령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역사적 인물을 보면 한일합방전인 『최신초등소학』(전8권·1895년간)에선 총수 99명(빈도수 3백19회)중 한국인이 83명(2백70회), 일본인 3명(4회), 기타 13명인데 비해 합방후의 조선총독부편 『보통학교국어독본』(전8권·1912∼1915년)에선 한국인이 3명(18회)으로 준 반면 일본인은 21명(1백58회)으로 늘어났다.
이런 경향은 3·1운동 후 한국인의 수가 약간 늘긴 하지만 일제통치 말기엔 한국인 이름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만다. 합방후의 교과서에 등장하는 일본인중에는 장군이나 의병 등 무인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교수는 이런 식으로 일제는 한국인 자녀들의 자주의식을 말살해왔다고 지적하면서 한국인 선조들의 이미지가 정책적으로 왜곡돼온 사실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보였다.
실로 무미하면서도 진력나는 과정을 통해 3만장의 카드를 만들어 이 작업을 완료한 이교수의 업적은 전혀 새로운 연구방법으로 일본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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