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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 고용해 번역·무역업 서비스…뜨개질로 독거노인 외로움 덮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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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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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수입한 인도네시아산 채반을 들고 있는 김형균 대표. “이들의 언어 능력이 우리 사회의 자산”이라고 말한다. [프리랜서 오종찬]

광주광역시에서 사업을 하는 김형균(39) ㈜예일 대표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 자녀야말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라고 믿는다. 2005년부터 무역회사 주재원으로 인도네시아·태국·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 6년여 동안 근무하며 갖게 된 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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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어머니 나라 언어를 익힌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훗날 무역업에 종사하면 외국 바이어들과의 경쟁에서 굉장히 유리할 것”이라며 “교육을 통해 그만한 언어 능력을 갖추게 하려면 엄청난 투자가 필요할 텐데 우리 사회는 이미 어마어마한 숫자의 외국어 능통자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문화가정은 도와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활용해야 될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 ㈜예일의 김형균 대표
“이주민은 중요한 외국어 능통자”
어린이집 알림장 번역으로 시작
책 번역, 무역 자료수집 등 확장



그는 결혼이주여성의 언어 능력을 활용한 아이템으로 2013년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베트남·태국· 인도네시아·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들을 파트타임으로 고용해 광주·전남 지역 어린이집·유치원을 대상으로 알림장 번역 서비스를 한 것이다.

“‘일시’ ‘시행’ ‘참관’ 등 알림장의 문어체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문화가정 엄마들이 많았어요. 광주·전남 지역 보육기관 20여 곳에서 팩스나 e메일로 알림장을 받아 번역해 보내줬는데, 반응이 참 좋았지요.”

하지만 2014년 알림장 번역 사업은 중단됐다. 보육기관들의 빠듯한 예산 사정 탓에 회사 매출이 좀처럼 늘지 않아서였다. 김 대표는 “매달 400만∼500만원씩 들어가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했다. 대신 공공도서관 등에 납품할 동남아 현지 도서 수입 사업과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 교재 번역 사업 등을 벌였다. 이 역시 이주여성을 활용해 펼친 사업이다. 최근의 주력 사업은 무역 관련 정보 수집 대행업이다.

“베트남에서 목재를 수입하려는 무역업체가 자료 수집을 요청하면, 베트남 출신 여성이 현지 공장 등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보고 현지에 사는 친구·가족에게 부탁해 현장 확인을 하는 식으로 진행합니다. 인터넷에 의존해 무역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참 위험하거든요. 이런 아날로그적인 방법이 꼭 필요하죠. 업체로선 출장비 등을 절약할 수 있어 경제적이고요.”

현지 사정에 밝은 이주여성들의 조언이 사업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제품의 적정 가격은 얼마” “이 물건은 어느 지역이 더 좋다” 등 이들의 귀띔이 유용한 정보가 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현재 20명 정도의 이주여성을 파트타임 인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프로젝트별로 일을 맡겨 8만원씩 일당을 준다. 이들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을 계속 찾아 고정적으로 출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김 대표의 목표다.

그는 “이렇게 이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활용하다 보면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캄보디아 말도 할 수 있다’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이주여성들에게 빨리 한국어를 익혀 동화되라고 요구하지 말고, 외국어 잘하는 한국 사람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 ‘호오 생활예술’의 장유진 대표
털실?설명서 뜨개질 키트 판매
구매자, 목도리 완성 후 기부
판매액 10%도 노인시설에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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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한 손 캠페인’으로 완성된 목도리를 들고 있는 ‘호오(好娛) 생활예술’의 장유진 대표. “뜨개질을 하는 동안이라도 독거노인을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뜨개질을 하는 동안이라도 독거 노인들을 생각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목도리 기부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어요.”

시각디자인회사인 ‘호오(好娛)생활예술’의 장유진(38) 대표는 목도리를 독거 노인에게 기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름하여 ‘따뜻한 손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은 작은 털실 한 뭉치로 시작된다. 호오생활예술이 털실과 뜨개질 설명서가 들어있는 키트를 판매하면 구매자는 목도리를 완성한 다음 호오생활예술로 되돌려 보낸다. 이렇게 모인 목도리는 독거 노인을 위한 시설에 기부된다. 뜨개질 키트 판매 금액의 10%도 독거 노인을 위해 기부한다.

“뜨개질을 선택한 것은 편하기보다는 불편한 기부가 지속적인 관심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돈을 내는 게 편한 기부이긴 해도 쉽게 잊히는 반면, 뜨개질 기부는 뜨개질하는 내내 독거 노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잖아요.”

기부하는 목도리는 일반 목도리보다 작은 크기에, 실외용이 아닌 실내용 목도리다. 장씨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방 안에서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고 간편한 실내용 목도리의 필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했다.

2012년 시작된 이 캠페인에 참여한 사람은 현재까지 약 2만5000명. 참여자가 늘수록 다양한 에피소드도 생겨났다. 장 대표는 “뜨개질 키트에는 구매자가 쓸 수 있는 편지지도 들어 있는데 목도리와 함께 손 편지를 전달하면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신다. 답장을 써서 찾아오시는 어르신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 대표가 독거노인에 대한 캠페인을 시작한 이유는 남일 같지 않아서다. “통계적으로 4명 중 1명이 독거 노인으로 살아간다던데 고령화가 가속화하면 내 친구나 이웃이 독거 노인으로 살아갈 것”이라며 “독거 노인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또 해보고 싶은 나눔 캠페인이 너무나 많다고도 덧붙였다. 최근에는 가방을 구매하면 자동으로 네팔 지진 피해 현장을 위한 생필품이 후원되는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이달 중순쯤 클라우드펀딩을 통해 캠페인이 시작될 예정이다.

“본업인 시각디자인 일을 하면서 캠페인을 진행하는 게 벅찰 때도 많죠. 이젠 그만해야지 싶다가도 기부 과정에서 느끼는 따듯함을 생각하면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그만둘 수가 없네요. 앞으로 디자인 요소를 접목해 다양한 기부 캠페인을 하고 싶습니다.”

광주광역시=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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