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투신 20대와 행인 부딪혀 사망…옆엔 만삭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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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목숨을 끊으려고 스스로 뛰어내린 대학생이 귀가하던 주민과 부딪혀 두 사람 모두 숨졌다. 투신 대학생은 공무원시험 준비생, 피해 주민은 영화 '곡성(哭聲)' 개봉에 맞춰 지역 알리기에 앞장섰던 모범 공무원이었다. 만삭의 부인은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현장에서 사고를 목격했다.

1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후 9시48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한 아파트 20층 복도에서 1층 입구 쪽으로 대학생 유모(25)씨가 뛰어내렸다.

유씨는 때마침 아파트 입구로 향하던 전남 곡성군청 7급 공무원 양대진(39)씨와 부딪혔다. 유씨는 양씨와 부딪힌 후 콘크리트바닥으로 떨어지며 두개골이 골절돼 그 자리에서 숨졌다. 양씨도 쓰러지며 머리를 심하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 날인 1일 0시40분쯤 결국 숨졌다.

아파트 20층 복도 바닥에서는 유씨의 가방과 휴대전화·신발이 발견됐다. 가방 속에서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해 온 내용과 "나는 열등감 덩어리다. 내 인생은 쓰레기"라고 적힌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술을 마신 흔적도 있었다. 유씨는 이 아파트가 아닌 인근 아파트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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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고 현장에는 야근을 마치고 오는 남편을 마중 나간 임신 8개월의 부인(34)과 아들(6)이 있었다. 양씨의 부인은 눈앞에서 사고를 목격한 뒤 119에 신고했다.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 출신인 양씨는 2008년 9월 경기지역 한 기초자치단체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처가가 있는 곡성으로 근무지를 옮겨 사고 당시 기획실 홍보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곡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지난달 11일 영화 '곡성'의 개봉에 발맞춰 곡성군 소개에 적극 나섰다. 유근기 군수가 '영화 곡성을 지역을 알릴 기회로 삼자'고 쓴 기고문을 보도자료 형태로 재가공하고, 감각적인 군 소개 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지난달 20일부터 열흘간 열린 곡성세계장미축제에는 23만여 명이 찾아오는 등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양씨는 사고 당일에도 곡성을 알리는 자료와 소식지를 만들다가 늦게 귀가하던 중이었다. 양씨는 지난해 전남도지사 표창을 비롯해 그간 3차례 표창을 받았다.

경찰은 공무원 양씨까지 숨지게 한 대학생 유씨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사망한 상태여서 검찰에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지겠지만 양씨의 보상 등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경찰 관계자는 "대학생 유씨는 평소 자신의 외모와 처지를 남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며 "술에 취한 상태여서 아파트 아래쪽에 행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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