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혜영, 나는 연극배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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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연극 ‘갈매기’ 아르카지나 역의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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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로 4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이혜영’. 연극 배우로 다시 서는 것은 이혜영의 오래 된 숙제였다.

연극배우로서 오랜 숙제 풀기 위해 나와
젊을 땐 니나, 이젠 아르카지나 역에 꽂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갈매기’ 준비

“자연인으로서의 한 배우가 연극 속 등장인물과 일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혜영은 태생적으로 아르카지나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입니다.”

‘태생적’이라는 국립극단 김윤철 예술감독의 표현은 정확했다. 고혹적인 눈매, 우아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 직접 만나 본 배우 이혜영(54)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 속 유명 여배우 ‘아르카지나’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아르카지나로 무대에 서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헤다 가블러’ 이후 4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배우 ‘이혜영’. 지난 26일 명동 예술극장에서 배우 이혜영과 동료 출연진을 만났다.

아르카지나 역할을 수락하기까지 네 번 거절했다고 들었다.
“아르카지나는 모든 연극배우가 꿈꾸는 배역이다. 하지만 동시에 올드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는 배역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원했던 배역은 아르카지나가 아닌 젊은 여배우 ‘니나’였다. 94년 김광림 연출의 ‘집’이라는 연극에서 극 중의 극으로 ‘갈매기’가 등장했다. 그곳에서 니나의 역할을 짧게 연기했는데 당시 캐릭터에 흠뻑 빠져 눈물까지 펑펑 쏟으며 독백 연기를 한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난 당연히 ‘니나’를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출연을 결심하게 만들었나.
“오랜 숙제를 풀겠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심했다. 연극배우로서 연기 인생을 시작했고 그동안 무대 위에서 꽤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연극인 이혜영’으로 바라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런 고민을 김윤철 감독님에게 털어놓자 “아르카지나 역할이야말로 연극배우로서의 이혜영을 완성시켜주는 배역”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갈매기’를 다시 읽어보니 이번에는 니나가 아닌 아르카지나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희곡 ‘갈매기’는 연출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됐다. 국립극단 ‘갈매기’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김윤철 예술감독) “자세하게 말씀드리긴 곤란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갈매기’를 준비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연극에는 갈매기 자체가 오브제로 직접 등장하곤 한다. 한 헝가리 연출가는 수퍼마켓 비닐봉지에 ‘갈매기’를 담아 소비주의를 표현했고 루마니아에서는 무대 위에서 갈매기를 직접 총으로 쏴 폭력성을 강조했다. 국립극단 갈매기 역시 지금까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무대 위에 등장할 것이다. ”

희곡 ‘갈매기’는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이다. 유명 여배우 아르카지나, 어머니 아르카지나의 그늘에서 벗어나 작가로 성공하고 싶은 아들 ‘트레플레프’ , 그리고 최고의 여배우를 꿈꾸는 그의 연인 니나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욕망·갈등,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한다. 연출은 유럽의 차세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루마니아 출신의 펠릭스 알렉사가 맡는다.

국립극단의 ‘갈매기’는 오는 6월 4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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