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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로 읽는 화웨이·삼성 소송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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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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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묘하게도 중국 시장과 얽히면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무협지’ 같은 상상력을 발휘해 사안을 분석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최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특허침해 소송도 그렇다. 화웨이 측은 삼성전자가 11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47쪽짜리 소장을 제출했는데 세계 언론들은 침해 기술이 뭔지엔 관심도 없고 온통 화웨이의 속셈과 득실 분석에만 몰입한다.

특허라는 기술 문제에 정치적 분석이 횡행하는 것이다. 대략 이런 얘기다. 한·중 전문가들은 득실 차원에서 화웨이의 이익을 점친다. 삼성 상대 소송만으로도 기술적으로 향상됐다는 이미지 상승 효과를 얻었다는 것. 여기에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가 주장하는 ‘특허핵우산론’을 넓게 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한데 여기서 특허핵우산론은 볼수록 ‘중국스럽다’. 원래 특허 관련 글로벌 스탠더드는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용하려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반면에 특허핵우산론은 핵보유국이 핵 없는 동맹국 안전을 보장하는 핵우산 개념을 차용해 특허권 보유 기업들끼리 상호 특허를 공유해 특허 문제를 털고 가자는 일종의 ‘합종연횡’ 전략이다. 화웨이가 최근 연간 특허 출원 건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할 만큼 특허 출원에 열을 올리는 것도 핵우산 동맹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거다.

화웨이는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세계 3위지만 중국과 동남아 판매를 빼면 선진시장 점유율은 1% 안팎이다. 선진시장 진출의 선결과제가 지적재산권 해결이다. 어쨌든 이런 발상은 일부 효과를 거둬 애플·퀄컴·에릭슨 등과 특허를 공유하는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을 맺었고, 이 과정에 협상·소송 등 강온전술이 총동원됐다. 삼성전자 소송도 삼성을 핵우산 아래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제공격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화웨이가 지난해 에릭슨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 화해로 종결하면서 이미지 상승과 크로스 라이선스 등 얻은 게 많았다는 점에서 삼성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무협지 관점에서 보자면 화웨이의 주력 무공인 ‘특허핵우산 신공’은 ‘반객위주지계(反客爲主之計)’ 같은 기만술로도 풀이할 수 있다. 손님으로 들어가 주인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전략이다. 후한말 서주성에 손님으로 간 여포가 유비를 내쫓고, 원소가 자신을 초청한 기주성의 한복을 내쫓고 성을 차지하는 등 중국 역사에 흔한 사례다. 특허핵우산 명분 아래 네 것 내 것을 섞어 주인을 모호하게 한 뒤 시장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는 거다.

문제는 변칙적인 중국 방식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멀지만 시장에선 희한하게 먹힌다는 점이다. 한국 기업엔 콧대를 높이는 미국 기업도 중국에선 중국 방식을 따른다. 한 예로 미국 퀄컴사도 최대 고객이었던 한국 기업에선 협상의 여지 없이 높은 기술사용료를 꼬박꼬박 챙기더니 중국에선 달랐다. 지난해 중국 정부가 특허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한마디 하자 곧바로 1조원대의 과징금을 내고, 기술사용료 재협상과 중국 맞춤형 반도체 생산 투자에 나섰다.

왜? 중국은 시장이 깡패여서다. 큰 시장을 무기로 자본주의 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흔들어도 글로벌 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중국 방식에 맞춘다. 중국과 함께하는 사업(business with China)이라는 기치를 내걸면서. 기술굴기(?起)보다 시장굴기가 무서워서다.

이번 삼성전자 소송은 삼성이 알아서 하겠지만 걱정스러운 건 중국의 변칙적 도전은 앞으로도 전방위에서 계속될 거라는 점이다. 우리가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체득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먹히지도 않는 시장. 게다가 중국엔 고대 병법서만 봐도 속임수나 거짓과 진실을 현란하게 섞어 혼돈시키는 기술 등 시장을 흔들 축적된 기만술의 문화유산이 넘친다. 이젠 중국 방식을 읽고 대처하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중국 시장에 대한 새로운 응전 방식을 찾아야 한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