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민 생활 안정을 위한 캠페인 -양 형사의 하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따르르르』-.
지난 5일 새벽 4시. 자명종 우는 소리에 선잠을 깬다.
서울 K경찰서 양형사(41). 자정넘어 눈을 붙여 수마처럼 밀리는 졸음을 떨치고 세면을 하는둥 마는둥 대문을 나선다.
『오늘은 꼭 겡꼬(범행 현장에서 잡는 것) 한건이라도 해야지.』
집앞 길에서 호주머니를 뒤진다.
1만 5천원. 이틀전 탄 수사비 7만 5천원 중 6만원이 날아가고 남은 전재산이다.
『후두둑』빗방울이 떨어지자 얼른 택시를 잡아탄다.
상오 4시 30분. 같은조 서형사(39)가 형사계에 웅크리고 있다.
『가지.』
말없이 을지로 5가로 향한다.
약국 전문털이 이모(31)의 집앞, 이는 지난달 8일 새벽 3시 서울 화곡동 S약국에서 1백 80만원 어치의 약품을 털어간 3인조 복면 강도단의 용의자. 벌써 한달째 추적하고 있는 월척(큰 강도)감이다.
이의 집 부근 연탄가게앞에는 「꼼상」(28)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 꼼상은 양형사가 데리고 있는 「빠곰이」(정보원).
이를 용의자로 찍어준 바로 이 꼼상.
『눈치를 챘나봐요. 어제 아침 삼성동 친구집에 간다며 집을 나간뒤 아직 안 들어왔어요.』
『수고했어. 창고(훔친 물건 보관하는 곳)는 어디래?』
『모르겠어요. 똘마니들 풀어서 알아봐야겠어요.』
꼼상을 보내고 서형사와 함께 집앞 길목을 3시간 남짓 지켰으나 허탕.
상오 8시. 해장국 한그릇씩으로 끼니를 때우고 경찰서로 들어간다.
형사계 보호실에 들러 간밤에 들어온 피의자들의 얼굴을 익혀둔다. 전과자들은 재범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훗날 겡꼬에 대비해 두는 양형사의 빼놓을수 없는 일과.
상오 9시. 조회가 시작되자마자 계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1백일 작전이 시작된 지 한달이 넘었는데 뭣들 하는거야. 2학기 개학하면 데모진압하랴 경호하랴 정신없이 돌아간다구. 미제사건들 빨리 해결해!』
상오9시30분. 반장에게 약국 털이범의 수사 상황을 보고하고 있는데 빠곰이「칠뜨기」(31) 로부터 숨넘어가는 전화가 왔다.
월척이 있으니 빨리 만나잔다.
서형사와 함께 신정동 P다방으로 달려간다.
『부산 백금가루(히로뽕) 밀조단에서 내부싸움이 벌어져 물운반(운반책) 1명이 피살돼 암매장됐대요. 애비(판매책)가 양동에서 먹고(배회하고)있어요.』 귀가 번쩍 뜨인다.
『애비는 뭐 하는 놈이야?』
『꽈자(전과자)인데 펨프들에게 백금가루 주사 놔주고 먹고살어.』
칠뜨기를 앞세워 곧장 양동으로 달린다. 수소문했으나 종적이 없다.
두어 시간 남짓. 애비란 자는 어쩌다 밤에만 한번씩 나타난다는 정보를 얻어냈을 뿐이다.
하오1시. 후텁지근한 날씨. 땀이 비오듯 하는데 허기가 목에까지 찬다. 칠뜨기와 셋이서 5백원짜리 싸구려 냉면으로 배를 채운다.
『낚시밥을 던져봐.』 칠뜨기에게 펨프 한명을 꾀어 히로뽕을 맞는 것처럼 가장, 판매책을 유인해 보도록 지시한 뒤 식당을 나선다.
바로 그때. 앞서 걸어가는 2명의 양복장이. 이 더운 날씨에 넥타이는 없지만 양복을 입은 것이 수상하다. 육감.
『겡꼬로 하나 걸릴지 몰라.』
아니나 다를까. 동자동버스정류장 인파속으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놈이 중년여인의 백을 딴다. 번개처럼 덤벼 녀석의 한손을 뒤로 비틀었다.
『왜 이래!』
녀석이 소리치며 한손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는 순간 서 형사가 그 손마저 잡아 비틀면서 안호주머니를 뒤져 20cm가량의 생선회칼을 빼앗는다. 한녀석은 어느새 튀어 버렸다.
시퍼렇게 날이 선 식칼을 보니 더위가 싹 가시며 식은땀이 흐른다. 『후유-.』
서 형사에게 일꾼(소매치기)을 피해자와 함께 경찰서로 보낸뒤 다시 약국털이집으로 향한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 땀.
버스를 타기 위해 남대문쪽으로 걸어가는데 「삐삐」(수신용 무전기)가 운다. 형사계로 전화를 건다. 지난주 송치한 10대 강도 3명에 대한 증거 보강지시가 검찰로부터 왔다는 연락.
『제기랄, 또 증거불충분이야.』
장물아비에게 물건을 팔려던 일당을 잡아 범행을 자백 받았으나 피해자인 가정주부(28) 가 강도 당한 사실을 부인하는 사건. 범인들이 주부를 폭행했기 때문이다.
여의도의 피해자집을 찾아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신변보장과 비밀보장을 맹세한 뒤 겨우 피해자 진술조서를 받는다.
검찰에 조서를 넘겨주고 경찰서에 들어선다. 하오 6시 30분. 반장보고를 마치고 근무일지를 적고나니 하오 7시 20분.
오늘은 큰딸(9)의 생일. 주마니를 뒤져보니 1천원이 남았다. 동료 서형사에게 1만원을 꾸어 케이크 1개를 산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반장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지킨지 3시간. 자정 가까이 집으로 돌아간다.
저녁밥을 먹는둥 마는둥 파김치가 되어 쓰러져 코를 골다 양형사는 약국털이범과 히로뽕 판매책이 함께 칼을 들고 달려드는 꿈을꾼다.

<길진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