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찬밥먹는 수사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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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무궁화 넷(총경)달고 경찰서장하는 동기생을 만나면 제신세가 서글퍼집니다. 세상 헛 산 기분도 들고….』
서울 S경찰서 P형사(51).
행인의 몸짓과 눈빛만 봐도 일꾼(소매치기)을 가려내는 치기전담반의 베테랑.
수사경찰 23년-. 형사·조사요원으로 일선 사건현장을 누빈 그의 계급은 말단 순경.
63년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순경공채에 응시, 외근형사로 사복근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경찰동기생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탐정이 되고싶었던 소년시절의 꿈이 이뤄졌을뿐만 아니라 힘껏 뛰어 TV수사극의 「콜롬보」형사처럼 이름도 날릴수 있다는 자부심에 몸을 떨었다.
잘 하면 경찰서장이 돼 고향에 부임하는 금의환향의 꿈도 꾸었다.
그러나 사건수사 일선에 물귀신처럼 달라붙는 징계의 악몽이 그의 꿈을 산산조각나게 한다.
68년, 힘들여 잡은 강도가 범행을 부인한다고 한번 태운것(고문)이 말썽이 돼 징계1호인 견책처분을 받는다.
2년뒤 조사계 근무때 또하나의 별(징계)을 달았다. 고소사건의 고소인이 이발소에서 P형사의 이발료를 내준 것이 뇌물수수가 되어 제2호 견책처분을 받은 것이다.
고소인은 피고소인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피고소인이 돈을 갚지않고 구속되자 P형사가 돈을 받아내주지 않았다고 불만, 이발료를 들어 투서를 했기 때문.
조사요원때 P형사는 2개의 별을 더 단다.
『고소사건 잘 다뤄봤자 본전입니다. 걸핏하면 낑먹었다고 투서질이니 징계 안먹을 장사있나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사건을 다루다 보면 결국 한쪽은 불만이 있게 마련이어서 자칫 사소한 실수로 처벌을 받게 된다며 투덜거린다.
형사계 외근으로 뛸때는 몇차례 월척(큰강도 검거)을 낚아낸 공로로 표창을 받아 몇 개의 징계가 상쇄되면서 진급시험 응시자격도 있었으나 시험만 치면 낙방하기 일쑤. 집에도 제대로 못들어가며 밤새워 강·절도를 쫓다보니 도대체 공부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특진이 없는한 P형사는 87년 순경으로 옷을 벗게 된다.
징계가 없어도 수사요원들은 진급이 어렵다.
일반적으로 수사요원들에게는 유달리 청탁이 많게 마련. 그런데 그 청탁이란게 대부분 들어줄수 없는 것들이고, 그 들어줄수 없는 청탁을 들어주지 않은 사실이 진급심사때는 『그친구 위 아래도 몰라보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물귀신이 되곤 한다.
Y경찰서의 K경정.
해방되던 해인 45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한 이래 보안과1년, 외근 7개월을 빼고는 38년5개월간을 수사에만 몸담아온 한국 수사경찰의 산증인.
경위때 청룡봉사상을 받아 경감으로 특진했을 정도의 그도 징계 한번 없지만 경찰의 꽃인 일선 경찰서장 한번 해보지 못한채 내년에 옷을 벗는다. 수사경찰관들은 K경정의 아쉬운 퇴역을 놓고 수사경찰의 찬밥론을 들먹인다.
실제로 전국의 경찰서장 1백95명중 수사출신 경찰서장으로 서울 강남경찰서 천기호총경, 서대문경찰서 최남수총경, 경기 안양경찰서 김흥선총경, 부산 동내경찰서 강석윤총경등 열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올 상반기 정기 진급심사때 서울시경 산하에서 진급한 경찰관(총경·경정·경감·경사)1백52명중 수사출신은 22명. 그나마 올해는 예년에 비해 수사쪽을 파격적으로 우대했는데도 전체진급자의 14.5%선이다.
그래서 많은 경찰관들은 정보·대공등 이른바 「시국관리부서」를 희망하고 유능한 수사요원들이 적지 않게 그쪽으로 빠져나간다. 우선 정보쪽은 징계의 위험부담이 적다.
수사간부들은 그래서 우리도 외국의 경우처럼 수사분야에서는 철저한 경과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경우는 처음 순경을 뽑을 때부터 수사요원은 일반경찰과 분리해 뽑는다. 진급도 수사요원들끼리만 경쟁해서 올라가므로 진급에대한 부담이 덜해 맡은일을 더욱 열심히 해낸다는것.
한 수사간부는 『적어도 수사요원들이 행정적 차원의 계급에 얽매이지 않고 「수사요원」 이란 긍지만으로도 일할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것이 곧 유능한 수사요원을 보호 육성하는 길이요, 그것은 또 강·절도를 더 많이 잡아내 시민생활을 보호하는 지름길이라는 얘기다. <오홍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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