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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만난 김종인 “대선구도 소용돌이, 준비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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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5 면

[뉴시스]

“올해부터 내년까지 대선 구도는 크게 소용돌이 칠 겁니다. 지금과는 아주 다를 겁니다. 당장 준비를 시작하세요.”


지난 1월 중순 저녁 식사를 하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가 맞은편의 후배 정치인에게 건넨 말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삼고초려로 김 대표가 더민주의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된 직후였다. 그러나 김 대표의 식사 파트너는 야권 인사가 아니었다. 앞 자리의 주인공은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 경기지사였다. 더민주행을 결심하기 훨씬 전에 김 대표가 “단 둘이서만 한 번 보자”고 제안해 만들어진 자리다. 남 지사의 한 측근은 “김 대표의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태도에 남 지사가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비단 남 지사뿐이 아니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 내 또 다른 대권 다크호스인 원희룡 제주지사와도 가깝다. 더민주에 입당한 뒤엔 짬을 내지 못했지만 1월 초까지는 가끔씩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함께했다.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원 지사를 만났다. 그러곤 “제주도는 중앙에서 멀고 규모도 작아 중앙정치에서 화제에 오르기 힘들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손학규-김종인 연대설’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한동안 소원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다음달 독대한다. 야권의 젊은 피 안희정 충남지사와도 따로 만나려 한다. 여야를 넘나드는 광폭행보다.

# 킹인가 킹 메이커인가‘킹’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구현하는 ‘킹 메이커’를 꿈꾸는가. 아니면 스스로가 킹이 되려는 건가. 지금처럼 더민주에 남아 문재인 대세론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대선 구도를 뒤흔드는 현상 파괴자로 빅뱅의 중심에 설 것인가. 정당의 경계와 정파의 담장을 넘나드는 김 대표의 행보에 정치권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그는 총선을 한 달 앞둔 지난 3월 16일 관훈토론회에서 “더 이상 킹 메이커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대선에 직접 출마할 뜻이 있느냐는 질문엔 “상황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나중에 판단할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이 때문에 그가 ‘킹’을 꿈꾸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그를 잘 아는 이들은 그 가능성을 낮게 본다. 그들은 “특정인을 점 찍어 뒀거나 염두에 두고 킹 메이커를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지 직접 대선에 나서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킹이 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총선 직후부터 그는 활발하게 움직였다. 총선 때 서로에게 총질을 했던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와 먼저 비밀 조찬회동을 했다. 정치판을 읽는 눈이 정확하기로 소문난 두 사람이 모여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최근엔 정의화 국회의장도 따로 만났다. 정 의장은 ‘정계개편에 대비한 제4지대 정치 플랫폼’으로 일컬어지는 싱크탱크 ‘새 한국의 비전’을 지난 26일 발족시켰다. 정 의장은 둘만의 만남에서 싱크탱크의 고문직을 김 대표에게 제안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제1야당 대표가 고문을 직접 맡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름이 빠졌지만 김 대표는 당초 고문직을 흔쾌히 수락했었다.


김 대표의 부인 김미경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는 “대선에 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김 대표를 찾는 것 같다”며 “공식 일정이 없을 때는 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고 귀띔했다. 정파나 진영과 무관하게 ‘대한민국호를 이끌 강호의 고수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가 직접 만나 탐색하는 모양새다.


‘킹 메이커 김종인’이 더 주목받는 건 ‘더민주의 대세’인 문재인 전 대표와의 아슬아슬한 관계 때문이다. 총선 전엔 ‘셀프 공천’ 파동, 총선이 끝난 뒤엔 ‘대표 재추대’ 문제로 김 대표는 친노계와 충돌했고 그 과정에서 김종인-문재인의 ‘인-인’ 관계엔 금이 갔다.


특히 총선 직후인 지난달 22일 만찬을 함께했던 두 사람이 ‘김 대표 추대론’을 놓고 전혀 다른 대화 내용을 기자들에게 전한 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김 대표의 참모는 문 전 대표에 대한 반감이 확연히 드러나는 에피소드 한 토막을 소개했다.


“5월 중순 김 대표가 친척, 지인들과 저녁 약속을 잡았다. 갑자기 생긴 일정 때문에 김 대표가 약속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러자 친척들이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김종인씨가 아니라 완전히 문재인씨네요. 늦지 않겠다더니… 문재인씨처럼 거짓말만 하네요’라고 농담을 하자 김 대표도 별말 없이 꼼짝을 못하더라. 김 대표 주변에서 문재인은 ‘거짓말의 아이콘’이 돼버렸다.”


# 문재인과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변수 당초 김 대표의 공천 구상과는 달리 총선 뒤 더민주 내 권력 분포에서 친노계와 친문재인계의 비중은 더 강화됐다. 김 대표는 총선 전부터 줄곧 “대통령이 되려면 ‘친노’ 이미지를 벗고 ‘친노의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문 전 대표에게 조언했다. 친노 좌장 이해찬 의원을 공천 배제하는 데 올인했던 것도 “문재인에게 친노 탈색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였다고 김 대표 측은 주장한다. 하지만 ‘셀프 공천’ 파동을 거치며 “문 전 대표는 친노 세력을 제어할 ‘능력’이 없거나 그럴 ‘마음’이 없다”는 김 대표의 생각이 굳어졌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가 개선될 조짐은 별로 없다. 김 대표는 지역위원장 재선정 문제를 논의한 지난 16일 조직강화특위 1차 회의에서 “너무 오랫동안 지역을 관리하신 분(지역위원장)들을 솎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계파를 염두에 둔 발언은 아니었다지만 당내에선 ‘노무현 청와대’ 출신으로 총선에서 낙선한 정태호(서울 관악을)·백원우(경기 시흥갑) 위원장 등 친노계가 타깃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월 말 열릴 전당대회 준비를 담당할 전국대의원대회 준비위원회(전준위)의 7개 분과위원장 인선에서도 ‘강성’ 친노 인사들은 전원 배제됐다. 전당대회가 일방적인 친노 페이스로 흐르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김 대표가 드러낸 것이라고 당 관계자들은 해석했다.


당내 역학구도로 볼 때 문재인 대세론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김 대표다. 그래서 그가 문 전 대표의 대항마들과 손을 잡는 다양한 시나리오들도 제기되고 있다.


총선 직후 김 대표와 독대했던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3일 언론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와 함께 갈 생각이 없는 김 대표가 손학규 전 상임고문을 끌어들여 (손 전 고문이 문 전 대표에게 패했던) 2012년 대선 경선의 리턴 매치 국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선 손 전 고문이 지난 18일 광주에서 정계복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 일주일 전쯤 김 대표와 가까운 메신저가 전남 강진으로 손 전 고문을 찾아갔다는 얘기가 야권에서 돌고 있다. 김 대표가 다음달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기로 약속한 것도 주목을 끈다. 총선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박 시장의 측근들이 지난 공천에서 줄줄이 탈락하면서 오래전에 잡혀 있던 두 사람의 만찬 약속도 펑크가 났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지만 최근 대선 출마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박 시장에게 이젠 김 대표가 우군이 될 수 있다.


최근 “문 전 대표를 대선후보로 계속 응원해야 할지, 내가 슛을 하기 위해 뛰어야 할지는 그때 가봐야 안다”며 대선 도전 가능성을 언급한 안희정 충남지사에게도 김 대표는 큰 관심을 표명했다. 그는 26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남원안(남경필·원희룡·안희정)의 대선 조기 등판론’에 대해 “그들이 대선에 뛰어들면 대권 판도에 큰 기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더민주 소속 안 지사에 대해선 “그 사람이 대통령을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나도 한번 만나 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당 내부에서 사람을 키워 ‘문재인 독주’를 견제하고 더민주의 체질을 수권정당으로 변모시키겠다는 게 그의 플랜A라고 한다. 하지만 그 목표가 당내 파워게임 속에서 좌초될 경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더민주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을까. 그의 핵심 참모는 “친노 일색의 더민주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고 당을 나가야 전체 대권 구도를 뒤엎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김 대표는 제3지대로든 어디로든 나갈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새누리당 소속 남경필·원희룡 지사, 새로운 중도세력의 기수가 되려는 정의화 국회의장 등 비박계 인사들과의 잦은 회동이 예사롭지 않다.


김 대표가 직접 ‘킹’이 되려 나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까. 김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조언하는 부인 김미경 교수와 처사촌동생 김창경(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한양대 교수에게 가능성을 물었더니 “세력도 없고 당선 가능성도 없는데 출마하겠는가. 직접 대선에 나설 일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대표와 가까운 측근들도 “천지개벽이 아니면 가능성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대표는 그동안 ▶스스로의 머리로 정치적 판단을 해내야 하고 ▶사물을 쉽게 보지 않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대통령의 조건’을 꼽아왔다. 그랬던 그는 26일 통화에서 “아직도 뚜렷하게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상황이 바뀔 시간은 아직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이 기다려 보자”고만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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