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71년 전 하늘서 죽음 떨어져…잊어선 안 될 기억”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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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원폭 피해자인 모리 시게아키를 포옹하고 있다. [AP=뉴시스]

27일 오후 5시쯤 일본 히로시마(廣島)시 상공.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태운 헬리콥터가 모습을 나타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 미 B-29 전략폭격기가 세계 최초의 핵무기 ‘리틀 보이(Little boy)’를 떨어뜨린 바로 그 하늘이다. 섭씨 2800도의 버섯구름이 높이 18㎞까지 치솟았던 그때와 달리 구름만 조금 낀 채 맑고 깨끗했다. 잿더미로 변했던 도시는 깔끔하게 정돈됐고 평화로웠다.

일본 피해자와 포옹, 사죄는 안 해
150m 옆 한국인 위령비는 안 찾아
“원폭은 인류 스스로 파괴하는 수단”
핵무기 없는 세계, 비전 추구 강조

5시25분쯤, 오바마 대통령은 승용차 편으로 원폭(原爆) 피해의 상징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원폭 투하 71년 만에 이뤄진 미 현직 대통령의 역사적인 방문이다. 오바마는 원자탄 피해의 참상을 전해주는 유품들이 전시된 평화기념자료관부터 10분간 둘러봤다. 곧바로 아치형의 원폭 희생자 위령비로 이동해 헌화하고 잠시 눈을 감은 뒤 고개를 숙였다. 엄숙한 표정이었다.

“71년 전 죽음이 하늘에서 떨어졌고 세계가 바뀌었다. 원폭은 인류가 인류 스스로를 파괴할 수단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바마는 헌화 뒤 연설에서 핵무기의 참상부터 일깨웠다. 그는 “이곳에서 죽은 수십만 명의 일본인과 수천 명의 한국인, 수십 명의 미국인을 추도하기 위해 왔다”며 “그날의 기억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역사를 직시해 책임을 공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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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연설을 마친 뒤 평화공원을 떠나기에 앞서 피폭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AP=뉴시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45년 말까지 주민 35만 명 중 1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강제 징용 등으로 끌려온 조선 출신자 2만 명도 숨진 것으로 재일한국민단은 추정하고 있다. 사흘 후인 8월 9일 나가사키(長崎)에 떨어진 두 번째 원폭 ‘팻 맨(Fat man)’으로 인한 사망자는 7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원폭 투하에 대해 사죄는 하지 않았다. 오바마는 ‘핵무기 없는 세계’의 비전을 거듭 밝혔다. “인류가 악을 범하는 것을 근절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대량의 핵무기를 가진 미국 등이 핵무기 없는 세계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2009년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가 히로시마 방문을 통해 그것을 정치적 유산으로 삼겠다는 생각도 드러냈다.

오바마는 미·일 관계의 발전도 강조했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날 이래 미국과 일본은 동맹 관계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우정을 쌓아 왔다”며 “전쟁을 피하기 위해 더불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이어진 연설에서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미·일 관계의 관점에서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이번 방문이 “미·일 간 화해, 신뢰와 우정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새겼다”며 오바마의 결단과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연설이 끝난 후 행사장에 있던 피폭자인 쓰보이 스나오(坪井直·91) 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 대표위원과 피폭자 모리 시게아키(森重昭·79)와 대화를 나눴다. 원폭으로 희생된 미국군 포로들의 자료를 모아 미국 유족들에게 전달한 모리는 대화 도중 눈물을 흘렸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따뜻하게 안았다.

오바마는 이어 아베의 안내를 받으며 구리로 덮인 철골의 타원형 돔과 일부 뼈대만 남아 있는 원폭돔 근처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돔 안의 시계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오전 8시15분을 가리킨 채 멈춰 있었다. 하지만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서 직선 거리로 150m 떨어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는 끝내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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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평화공원 안에 있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사과를 요구했다. [AP=뉴시스]

전날 일본으로 건너온 경남 합천의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원 6명과 활동가 등 10여 명은 실망감을 드러내며 미국의 공식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피폭을 당한 심진태(73)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한국 피해자들은 일제 강점기에 끌려와 혹독한 고생을 하다가 피폭을 당했다” 고 말했다. 한정순(57)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은 뇌성마비 아들(34)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대물림되는 잔인한 삶을 살고 있다. 핵 없는 세상, 평화로운 세상을 후손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인 피폭자들은 약 70%가 합천 출신이다.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합천에는 현재 국내 원폭 피해 생존자 2494명 중 620명이 살고 있다.

히로시마=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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