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혈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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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년남자 환자가 몹시 겁먹은 표정으로 찾아왔다. 3년전에 위궤양으로 진단받았으나 규칙적 치료를 하지 않은채 바쁜 직장생활에 시달려 오다가 약5일전부터 대변빛이 검게 나와 병원에 찾아왔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항상 권태감·피로감·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찰때가 잦다는 얘기다. 진찰결과 위궤양으로 확진되었고 심한 빈혈이 있는것도 알게됐다.
위나 장의 어느 부위에 출혈이 생기면 당연히 대변에 섞여나오게된다. 그러나 항상 새빨간 선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피를 즉시 알아볼수있는 경우는 대개 장의 하부에서 생긴 출혈일 때다. 이것을 혈변이라고 한다. 혈변은 치질·이질·대장염등에서 자주보게된다. 치질에서 보는 혈변은 대변의 표면에 새빨간피가 묻어나온다. 이것은 대변이 나올 때 혈관이 터져서 피가 대변표면에 묻기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변비가있는 사람에 많다.
이질이나 심한 대장염에서는 설사와 더불어 혈액이나 점액이 나오게된다. 또는 직장암이 있을 경우에도 혈변을 보는 일이 있다. 혈변이 나오는 원인으로 제일 많은 것이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으로 궤양 부위에서의 피가 장시간에 걸쳐 장을 통과해 나오기 때문에 새빨간 선혈이 아니고 검게 보이게된다. 이것이 대량으로 석여있으면 변전체가 검어져서 심하면 콜타르처럼 보인다. 이런 것을 하혈이라고도 한다.
하혈의 원인은 토혈의 경우와 마찬가지지만 소장이나 대장의 상처에서도 생길수 있다. 출혈량이 적을 때는 대변의 빛깔만 보아서는 판단하기 어려우며 잠혈반응이라고하는 검사에 의해서 알게된다. 이 검사는 소화기관의 궤양이나 암의 조기발견에 사용하는 중요한 검사중의 하나다.
하혈이 있는경우 주의할 점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빈혈을 일으켜 갖가지 빈혈증상이 동반된다는 점이다. 피를 토했을 때는 곧 알게되어 그 진단이나 치료가 조기에 가능하지만 하혈이나 혈변이 있을 때는 그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우기 적은양의 피를 오랫동안 흘리게되면 빈혈로 피부가 창백해지고 숨이차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권태감을 호소하게된다.
혈변은 궤양 외에도 위암이나 간경변증에서도 보게된다.
간경변증에서 오는 출혈은 식도 하부나 위 상부의 혈관이 터져서 생기게 된다. 위·십이지장궤양이나 간경변증에서 볼수있는 출혈은 하혈뿐 아니라 토혈이 선행되는 심한 경우도 있다. 이때 토혈은 위 내용물이 섞여나오게 되며 일부는 검은 대변으로 하혈하게 된다. 출혈이 서서히 일어나는 경우는 토혈이 없이 하혈만을 보게된다. 혈변이 있을 때는 지체없이 의사의 진찰을 받아야하며 혈변의 원인은 반드시 규명해야만 한다. 문한규<부산대 의대학장·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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