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시체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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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 법의학/ "시체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 1
1960년대 한강 백사장에서 발견된 한 구의 변사체
특이한 점은 시신의 턱과 가슴에 난 이빨 자국
경찰은 성도착자의 짓이라 짐작할 뿐, 확실한 증거가 없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들였습니다.
“니가 범인이지! 빨리 불라!”
몽둥이질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 2
하지만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린 청년이 있었습니다
“잇자국이 뚜렷한 건 사망 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디요.
성폭행이라면 반항하는 과정에서 잇자국이 자동차 바퀴자국처럼 길게 끌렸어야 해요.
살해 후 성폭행으로 위장한 것 같습니다”

# 3
청년은 피해자 몸에 있는 잇자국을 석고로 떠 모형을 만들어 주변인들과 비교합니다
뜻밖에도 남편의 것과 일치한 범인의 치열

# 4
청년은 진범을 찾은 이 짜릿한 순간에 대해 의외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진범을 찾는 게 본 임무디요.
그런데 말야, 그보다 중요한 건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강요해 누명을 씌우던 때에
내가 범인을 밝히지 않았다면 누가 범인이 되었갔어요?”

# 5
과학수사가 전무하던 시절, 시신에 난 상처로 범인을 찾은
이 청년은 대한민국 1호 법의관 문국진(91)
사진설명: 1967년 7월 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 당시 문국진

#6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의대 3학년이던 1953년,
비를 피해 들어간 헌책방에서 ‘우연히’ 읽은 책 한 줄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법의학은 인간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이다’

#7
한국에 법의학이란 학문이 없던 시절,
법의학과 비슷한 병리학을 연구하다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독립기관이 되면서
국내 1호 법의관이 된 문국진
사진설명: 1978년 고려대 법의학교실 문국진과 제자들

#8
하지만 '의학도'였던 그의 선택은 응원 받지 못했습니다
“송장 만지는 더러운 일을 왜 하려 하느냐” - 어머니
“법의학은 하빠리(지위 낮은 사람)들이나 하는거야” - 스승 장기려 박사

#9
‘두벌죽음*’은 큰 형벌이라 생각했던 유교문화도 큰 걸림돌
한 노인은 목 매달아 숨진 손자를 부검하려 하자
“안 된다!”며 도끼를 머리 위에 던졌고
(*죽은 사람이 다시 해부나 화장, 극형 등을 당하는 일)
사진설명: 유골 검시

#10
부검할 곳도 없어 사과상자로 해부대를 만들어
현장에서 시체를 절개하는 일도 부지기수
사진설명: 1968년 제주 변사사건 부검

#11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시체는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는 과학수사의 힘을 믿었습니다
1970년부터는 고려대에서 법의학교실을 열어 후배도 양성했죠
사진설명: 1986년 고려대 법의학교실 창설 10주년 기념식

#12
법의학이 결정적으로 빛을 본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탁’하고 책상을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경찰은 고문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사진설명: 1987년 2월 7일, 박종철 추도회

#13
“물고문 도중 질식사한 것”
박종철의 한쪽 폐가 2배가량 무겁고, 폐 속의 플랑크톤을 발견한
부검의 황적준 박사. 그는 문국진 교수의 제자였습니다.
사진설명: 1988년 1월 13일, 검찰 출두한 부검의사 황적준 박사

#14
이 사건은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고문 치사 사건을 폭로하며
법의학자의 양심을 지켜낸 일로 평가 받습니다
사진설명: 1987년 1월 23일자 8면 중앙일보 기사

#15
문 교수는 이 사건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인권을 치료하는 학문인 법의학이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끌어냈디요"
사진설명: 1988년 2월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박종철 명예 졸업장 요구하는 학생들

#16
“모든 이의 죽음에 물음표를 남기지 않는 것이 법의학자들의 의무”
법의학의 대중화에 힘쓴 그의 소신 있는 행보로
현재 50여 명으로 증가한 법의학 관련 인력
사진설명: 2015년 7월 1일,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조사과 부검실

#17
한국 법의학 수준을 끌어올린 건
“증거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문국진의 믿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진설명: 2014년 12월 2일, 문국진 교수

취재.구성 이근아/ 디자인 주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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