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포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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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와인 스캔들이 세계에 확산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산 포도주에서 인체에 해로운 독성물질이 검출돼 이를 수입한 나라들이 판금하는 소동이다.
이미 영국과 서독등 유럽 10개국이 오스트리아 산 포도주의 전면판매금지조치를 실시했다. 서독은 정부의 뒤늦은 조치가 업자와의 결탁에 원인이 있다는 야당의 비난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영국은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산만이 아니라 서독·헝가리·불가리아·유고 산 포도주마저 유독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일본 후생성도 27일 오스트리아 산과 서독 산 포도주를 잠정 판금했다. 이 소동의 시발은 벌써 4월 하순에 일어났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동부의 포도주 특산지인 브르겐란트 지방에서 나는 포도주에서 유독 물질을 검출한 것이다.
포도주 제조업자들은 단맛과 알콜농도를 높여주는 디에틸렌 글리콜을 섞어 저급품을 고급품으로 속여 팔았던 것이다.
자동차의 부동액으로 쓰이는 이디에틸렌 글리콜은 사람이 l백mg이상 섭취하면 두통이나 일시적 신경마비를 일으킨다. 허약한 사람은 14g 정도로도 생명을 잃는다.
오스트리아가 이 불명예를 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다. 유독포도주를 만든 악덕업자 50여명이 적발됐다. 감미제 첨가를 아예 금하는 규제법조차 만들어졌다. 하지만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것 같진 않다.
오스트리아 수출 포도주의 8할을 사들이던 서독의 소동은 점입가경이다.
수입유독포도주가 3만ℓ나 돼 그걸 마셨을지도 모를 포도주 애호가들이 병원마다 신체 이상 여부를 알아보려고 줄을 서는 판이다. 오스트리아 포도주의 성가가 폭락할 것은 두말할게 없다. 그러나 서독도 큰소리는 못 칠 기록을 가졌다. 70년대 초 서독이 세계에 자랑하는 백포도주 모젤 와인에 설탕을 넣은 것이 밝혀져 세계적인 지탄을 받았었다. 법을 잘 지키기로 이름난 독일인마저 돈에 눈이 어두워 2백년 역사의 세계적 명성을 가진 모젤와인의 신?를 하루아침에 떨어뜨렸었다.
이에 비하면 프랑스의 대표적 포도주인 보르도 와인이 변함없는 명성을 유지하는데는 그만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보르도의 적포도주 중에도 지룽드강 좌안의 메도크 와그라브, 우안의 산데밀리온 등은 특히 유명하다. 프랑스 총생산량의 10분의1이다.
이들의 품질과 품격이 유지되는 건 포도의 재배법에서 양조법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조합과 국가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조합이 매년 일정위원에게 품질 등급을 판정케 하는 제도도 있다. 포도를 썩여도 고상하게 썩이는 (noble rotten) 방법을 끝까지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수요가 늘고 있는 국산 포도주의 질과 신뢰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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