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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에 살다] (22) '대표 산쟁이' 윤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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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설악의 토왕골로 달려간 손칠규씨는 1978년 2월 2일 악우회의 토왕폭 등반대와 합류했다.

신성삼.임근성.백승기.이진섭.이진우 대원의 지원을 받은 악우회의 윤대표 대장은 대구 왕골산악회의 손칠규 대원과 자일을 함께 묶고 다음날 오전 11시30분 토왕폭 하단에 붙었다.

하단의 동굴을 거치지 않는 왼쪽 루트를 통해 먼저 오르기 시작한 윤대장은 오후 1시 무렵 동대테라스에 올라섰다. 그는 77년 2월 악우회 후배인 유한규 대원과 토왕폭에 도전했을 때 동대테라스에서 심한 낙수(落水)를 만나 돌아서고 말았었다.

그때 유대원은 발톱을 여섯개나 뽑아야 하는 심한 동상에 걸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줄기가 동대테라스의 오른쪽으로 트여 다행히 등반루트에는 낙수가 심하지 않았다.

뒤따라 오르던 손대원은 오후 4시쯤 하단에 완전히 올아섰다. 4시간30분 만에 하단 등반을 끝냈다.

2월 4일 오전 11시40분. 윤대표 대장과 손칠규 대원은 상단 등반에 들어갔다.

토왕폭 상단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물이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윤대표씨라면 대표라는 이름 그대로 국가 대표급 산악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어쩌자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이라도 따게 되면 낳고 이름 지어준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릴 수 있는 인기 스포츠 종목의 '대표'가 아니라, 도대체 밥이 나오길하나 돈이 되길하나 부른 배마저 쉽게 꺼져버리고 마는 그놈의 산에 미쳐버린 '등산대표'가 되고 말았을까.

아버지의 이 같은 탄식은 아들의 이름을 '대표'로 지은 자업자득인지도 모른다. 윤대표의 아버지 윤선씨는 윤대표라는 이름을 오래 전부터 기억하고 있었다.

윤선씨가 알고 있는 윤대표라는 이름은 자랑스러운 대표적인 대장부였다. 아버지는 그런 대표적인 장부가 되라는 마음에서 아들의 이름을 대표라고 지었다. 아버지가 바랐던 '장부대표'와 지금의 산대표가 된 윤대표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윤대표는 체격은 작은 편이나 '겁없는 산사나이'라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외모를 지녔다. 한눈에 야무진 외골수임을 느끼게 한다. 검고 반듯한 얼굴을 가로지르는 짙은 눈썹은 당겨진 활시위에 놓인 화살 같은 긴장감을 준다.

윤대표는 산 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결벽증을 가진 '윤대표의 산'이다. 그에게는 오직 산만 산이다. 삶의 다른 국면을 산으로 대체하는 산쟁이들이 있지만 윤대표는 그마저 거부한다. 술도 담배도 모른다. 그에게 술과 담배는 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수도 적다. 말도 그에게는 산이 아니다. 입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얄미울 수 없단다. 파트너란 어떤 벽을 겨누고 뜻을 같이 했을 때 함께 오르는 동료에 지나지 않는다.

친구도 산이 아닌 것이다. 그런 친구를 따라 가는 곳은 강남일 뿐, 산이 아니다. 때문에 전혀 모르는 사람과도 자일을 함께 묶을 수 있고, 그만한 파트너가 없을 때는 혼자 오른다.

그런 윤대표씨를 산에 입문시킨 사람은 친형인 윤인표씨다. 대학에서 산악부원으로 활동하던 형은 70년 고교를 막 졸업한 동생을 데리고 서울 도봉산 선인봉의 남쪽 코스를 올랐다. '형제 산행'은 그후 3년간 계속됐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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