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 나는 돌을 들지 않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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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제 평창은 투표 전과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세계지도에 분명히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자크 로게 위원장의 말이다. 뉴욕 타임스(7월 3일자)는 평창의 부상을 하나의 놀라운 사건으로 간주했다.

이 신문은 호주 한 IOC위원의 "밴쿠버는 이번에 될 만했습니다. 그러나 평창은 정말 잘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놀라움이었습니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평창이 어떻게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지 분석했다. 비록 밴쿠버보다 더 우수하지는 못했지만 평가위원회의 평가가 높았다는 점, 감동적인 프레젠테이션이 IOC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점, 북미.유럽 중심의 겨울올림픽에서 아시아라는 지역적 강점 등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 뉴욕타임스 분석과 우리 생각

그렇다. 평창은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었다. 우리도 예측하지 못했고 세계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놀라움을 이뤄낸 데 대해 칭찬하고 감사해야 당연할 텐데 지금 우리는 분함에 휩싸여 있다.

세표만 더 얻었으면 되는 건데 김운용이라는 사람이 방해했기 때문에 안됐다는 원망이 나라를 덮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 金씨가 로비를 적극적으로 했으면 됐을 텐데 자신이 부위원장이 되려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를 뒤집으면 IOC위원들이 이 만한 표를 준 것은 로비 때문이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뉴욕 타임스의 분석은 잘못된 것이고 우리의 생각처럼 로비가 먹혔기 때문인가. 이처럼 표를 준 IOC위원을 모독하는 말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준비를 잘해 이룬 결과는 처박아 놓고 로비를 적극적으로 안해 떨어진 듯이 몰아가고 있다. 스스로 로비 왕국임을 만방에 선포하고 있는 줄 왜 모르는가. 자기 발등을 찍으면서도 그걸 모르고 있다.

金씨는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유치와 관련된 수뢰사건에 연루돼 IOC로부터 3년 전 '가장 심각한 경고'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이번 일로 몰리게 되자 "한국 올림픽위원회와 유치위원회를 조사시킬 수도 있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일지라도 평창의 실패를 몽땅 그의 탓으로 돌리려 해서는 안된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포퓰리즘이다. 실패나 잘못을 제도로 접근하지 않고 "저 사람 때문"이라고 몰아가면 당장은 쉽게 대중의 응어리를 풀 수 있다.

그러나 이로써 욕구불만은 해소될 수 있을지언정 거기에서 해답이 구해지지는 않는다. 정치나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일로 金씨를 제물로 삼을 수는 있지만 그가 제물이 된다 하여 우리의 다음 유치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에 뜻하지 않게 잘했으니 다음에는 무엇무엇을 더 보완하자"고 나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길이다.

金씨에 대한 여러 혐의는 "누가 뭐라고 말했다더라"는 '카더라'수준일 뿐 증거가 없다. 이런 일은 당사자의 양식과 도덕심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나라가 공식적으로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만일 金씨가 결백하다면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엄청난 인권 침해요, 명예 훼손이다.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가지고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은 품위있는 행동이 아니다.

*** 2014년 金씨 로비 또 필요하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2014년 올림픽을 다시 유치하려면 金씨가 필요하니 이번 일을 확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다음에도 그의 로비력이 필수적이니 유치를 하자면 할 수 없다는 식이다.

한편으로는 돌을 던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이용하자고 하니 이것이 정신분열증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그가 정말로 조국을 배반하고 자신의 이익을 앞세웠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지 "그만한 인물이 없으니 다시 이용하자"고 한다면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인재란, 이제 태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 하는 나라에서는 태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그와 같은 걱정을 잊고 단호히 판결을 내리는 나라라면 언제고 다시 태어난다."(시오노 나나미, 침묵하는 소수, 33쪽)

배반의 확증이 있다면 단호히 그를 배격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개인의 양식에 맡겨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옳다. 그렇기 때문에 온 나라가 그에게 돌을 던질지라도 나는 돌을 들지 않겠다. 대신 그를 대체할 깨끗하고 유능한 새 인물이 나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겠다.

문창극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