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피해자의 고통, 국가·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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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34·여)씨는 스물 일곱살이던 2009년 6월 출근길에 황산 테러를 당했다. 임금 문제로 갈등을 빚던 전 직장 직원들이 박씨의 얼굴을 향해 공업용 황산 800㎖을 끼얹고 달아났다. 박씨는 얼굴을 포함한 전신 2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 10주년 세미나
“죄 지은 자에게 미란다 원칙 알리듯
피해자에겐 보상 받을 권리 알려야”

“사고 직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몸도 마음도 추스를새 없이 매스컴의 인터뷰 요청과 수사기관의 진술요청이 밀려들더군요. 집안형편이 어려워 치료비 걱정도 컸습니다.”

박씨는 ‘한국범죄피해자지원 중앙센터’를 통해 피부 교정을 위한 성형수술비를 지원받았다. 심리치료 전문기관에서 심리치료도 1년 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막막하던 때 오롯이 피해자 편에서 지원을 하는 기관이 있어 큰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검찰청 주도로 이뤄지는 피해자 지원은 전문성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사건 발생 단계부터 사후관리까지 ‘원스톱 지원 기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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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24일 한국범죄방지재단(이사장 김경한 전 법무부장관·사진)이 범죄 피해자 보호법 시행 10주년을 맞아 마련한 학술세미나에 참석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범죄 피해자는 2014년 관련법 개정으로 최대 9960만원까지 구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법무부·여성부 등으로 지원 기관이 분산돼 있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날 세미나에는 박씨를 비롯해 문성인 법무부 인권구조과장, 조정실 해맑음센터장, 김지선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주제 발표를 했다. 김현웅 법무부장관를 비롯한 법조인, 대학교수,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범죄 피해자 지원사례를 발표한 문성인 과장은 “아무 잘못이 없는 범죄 피해자가 겪는 일들은 개인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국가와 사회가 함께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한 이사장은 “범죄와 피해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범죄자에게도 진술 거부권 등을 알려주는 ‘미란다 원칙’이 있듯이 피해자에게도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를 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미나에선 112 통합 신고 시스템처럼 범죄 피해자만을 위한 서비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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