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 3위 딜라이브 대주주 부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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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국내 종합유선방송(케이블TV) 업계 3위인 딜라이브(옛 씨앤엠)의 대주주가 부도 위기에 놓였다. 2조2000억원에 달하는 인수금융(대출)의 만기 연장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대주단이 채무조정안을 논의 중이지만 시중은행과 국민연금공단의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

MBK파트너스가 세운 KCI 자금난
2조2000억 대출만기 연장 불투명
시중은행·국민연금 입장 엇갈려
헬로비전 1조에 팔려 매각도 난항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딜라이브 대주주인 국민유선방송투자(KCI)는 지난달 말부터 이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2007년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 KCI는 딜라이브 인수금융으로 총 2조2000억원을 끌어 썼다(6330억원은 딜라이브의 차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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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5~7%의 이자를 지급한다는 조건에 은행과 보험사는 물론 국민연금공단도 돈을 댔다. 매년 KCI가 낸 이자만 1000억원이 넘었다. 지난해 초부터 KCI는 딜라이브 매각을 추진했다. 하지만 2조5000억원이라는 높은 희망가격 때문에 외면을 받았다. 인터넷TV(IPTV)에 밀려 케이블TV시장의 성장이 둔화한데다,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이 훨씬 싼 가격(약 1조원)에 팔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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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금융의 만기는 오는 7월까지다. 만기가 돌아오기 전까지 딜라이브를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팔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한은행을 비롯한 21개 대주단은 올 초부터 대안을 모색했다. 딜라이브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자부담을 줄여주는 게 우선이라고 봤다. 인수금융 2조2000억원 중 30% 가량을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대출금은 금리를 낮춰서 만기를 연장해주자는 방안이 나왔다.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채무를 조정해주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국민연금공단이 이 방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두 차례에 걸쳐 투자관리위원회를 열었지만 이러한 채무조정안은 부결됐다. KCI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추가 부담을 지지 않는 상태에서 대주단만 채무조정을 해주는 건 부당하다는 게 이유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인수금융 만기가 7월이기 때문에 좀더 시간을 갖고 투자 취지와 현재의 상황을 판단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연금이 반대 목소리를 내자 새마을금고와 KDB생명 등도 부정적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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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자 금융회사가 초조해졌다. 딜라이브가 부도가 나면 수천억원 대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A은행 관계자는 “실무자 회의에선 국민연금도 채무조정안이 경제적 실익 면에선 낫다는 데 공감했다”며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체계가 은행과는 달라서 위원회 설득이 어려운 듯하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는 “연기금은 은행과 달리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없고 감사원 감사를 받는다는 점도 국민연금이 다른 입장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주단 간사인 신한은행은 일단 27일까지 각 기관의 최종 입장을 취합키로 했다. 채무조정안은 21개 대주단이 100% 찬성해야만 채택된다.

만약 채무조정이 결국 무산돼 인수금융이 부도 처리되면 KCI는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된다. 딜라이브 경영권은 21개 대주단이 대출금 비율대로 나눠 갖게 된다. 경영이 흔들리면서 기업가치도 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BS투자증권 신건식 애널리스트는 “지금처럼 대주단이 의견 통일이 안 되고 대주주인 사모펀드 측과 대립하는 것은 딜라이브를 인수하려고 보고 있는 매수자 측에만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서로 뭉쳐서 어떻게든 높은 가격에 팔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와 정반대 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업계에선 현재 딜라이브의 인수 가격을 KCI의 희망가격보다 크게 낮은 1조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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