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기 않고 고등어 구우면 초미세먼지 ‘매우 나쁨’의 23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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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5㎡(25.7평)의 국민주택에서 환기를 전혀 하지 않고 고등어 한 마리를 구울 경우 실내 미세먼지 농도가 초미세먼지 ‘매우 나쁨’ 때의 대기 중 농도보다 23배나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음식 재료가 연소하면서 초미세먼지가 생기는 만큼 조리 후 최소 15분 이상 환기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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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23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뢰해 넓이 85㎡의 실험용 주택에서 환기 여부를 달리해 가며 여러 음식을 조리한 뒤 오염물질을 측정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비흡연 여성이 주방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로 인해 폐암에 걸린다는 지적이 세계보건기구(WHO)와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면서 실시됐다.

환경부, 85㎡ 주택 밀폐공간 실험
삼겹살은 14배, 계란 프라이 11배
창문 열고 환풍기 돌려도 1.2배
요리 뒤 창문 최소 15분 열어둬야

먼저 환기 장치를 전혀 가동하지 않고 완전 밀폐된 조건에서 요리를 해봤다. 그 결과 고등어 구이에서 가장 많은 초미세먼지가 나왔다. 요리 후 초미세먼지 농도가 2290㎍/㎥나 됐다. ‘매우 나쁨’ 때의 대기 중 농도(101㎍/㎥)보다 22.7배나 높았다. 외출 자제를 권고하는 초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때의 대기 중 농도(90㎍/㎥)보다는 25.4배 높은 수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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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삼겹살 구이에선 ‘매우 나쁨’ 때 기준의 13.5배, 계란 프라이에서는 11.2배나 미세먼지가 더 배출됐다. 구이·튀김이 아닌 볶음밥을 조리할 때도 상대적으로 적긴 했지만 1.8배가 나왔다.

초미세먼지는 WHO가 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고농도에 노출될 경우 호흡기·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실험에선 초미세먼지 외에 이산화질소와 또 다른 1급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도 검출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장은경 연구원은 “음식별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1인분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음식량이 늘어날 경우 초미세먼지 농도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환기 상태에서 조리했을 때는 미세먼지 배출량이 훨씬 적었다. 고등어 구이의 경우 창문만 열고 레인지후드를 가동하지 않았을 땐 초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 때 대기 중 농도의 1.7배로 환기가 전혀 안 될 때보다 현저히 낮았다. 창문을 닫고 레인지후드만 가동했을 때는 7.3배였다. 자연 환기가 레인지후드보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훨씬 큰 셈이다.

하지만 두 방법을 모두 써도 117㎍/㎥로 ‘매우 나쁨’ 때 기준보다 1.2배 높았다. 일반 주택의 평상시 초미세먼지 농도는 49㎍/㎥ 수준이다. 이 정도까지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려면 조리 후에도 한동안 환기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류연기 환경부 생활환경과장은 “조리 후에 창문을 30㎝가량 열어놓고 최소 15분 이상 자연 환기를 하면 초미세먼지를 9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바깥 공기의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다. 이럴 땐 레인지후드를 가동한 상태에서 가급적 짧은 시간에 요리를 끝내고 조리가 끝난 뒤엔 반드시 창문을 열어 환기하는 게 좋다. 어차피 실내 공기가 더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신축·리모델링된 건축물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기계 환기 설비를 함께 가동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도시가스·전기 등 조리에 쓰이는 연료와 상관없이 발생한다. 이우석 국립환경과학원 생활환경연구과장은 “미세먼지는 연료가 아니라 음식 재료 자체가 연소하면서 나온다”며 “이 때문에 똑같은 재료라도 삶거나 끓이면 굽거나 튀길 때에 비해 미세먼지가 훨씬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이달 중 ‘주방 요리를 할 때 실내 공기 관리 가이드’를 홈페이지(www.me.go.kr)에 올리고 소책자로도 제작해 지방자치단체·주부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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